2000년 12월, 메이저리그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텍사스와 10년 2억2520만달러에 계약해 FA 총액 2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매니 라미레스는 8년 1억6000만달러에 보스턴으로 갔고, 마이크 햄튼은 8년 1억2100만 달러로 역대 투수 최장계약기록을 세우며 콜로라도와 계약했다. 셋은 같은 에이전트를 두고 있었다. 일주일 사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혼자 1억달러 이상 계약을 세 건이나 성사시킨 최초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67)였다.
메이저리그의 FA 시장이 오랜만에 한파를 떨쳐낸 채 뜨겁게 달아올랐다. 보라스가 19년 만에 다시 놀라운 질주를 펼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연속 터진 메이저리그 대형 FA 계약의 총액은 8억 달러가 넘는다. 10일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워싱턴에 잔류하며 7년 2억4500만 달러에 계약했고, 11일에는 게릿 콜이 뉴욕 양키스와 역대 투수 FA 최고 계약인 9년 3억2400만 달러에 사인했다. 12일에는 야수 최대어로 불린 앤서니 렌던이 LA 에인절스와 7년 2억45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모두 7년 이상 대형 계약으로 총액은 8억1400만 달러다. 앞서 3일 신시내티로 이적하며 4년 6400만달러에 사인한 내야수 마이크 무스타커스의 계약까지 더하면 보라스의 고객 4명의 계약 총액은 8억7800만 달러(약 1조214억원)다.
에이전트는 보통 총액의 4~5%를 수수료로 받는다. 특급 에이전트인 보라스의 수수료를 5%로 계산하면 12월에 성사시킨 이 4건의 계약으로만 보라스는 4390만 달러(약 515억원)를 벌었다. 한 달 사이에 역대 FA 평균연봉 1위인 콜(3600만달러)보다도 많은 수익을 챙겼다. 보라스는 주목받는 투수 류현진, 댈러스 카이클과 외야수 니콜라스 카스테야노의 FA 계약도 추가로 남겨놓고 있다. 계약 총액 10억 달러는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역대 FA 총액 1위인 브라이스 하퍼의 계약(13년간 3억3000만달러·필라델피아)을 성사시킨 보라스는 특히 올해 FA시장에 나올 특급 선수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현지에서는 윈터미팅을 앞두고 일찌감치 ‘보라스쇼’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대형 계약들을 쏟아내 FA 시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메이저리그 역시 KBO리그와 마찬가지로 FA 시장이 혹한기를 겪었다. 지난해 FA 최대어는 하퍼와 매니 마차도였다. 둘의 협상은 해를 넘기고서도 두 달이나 지나서 결말을 맺었다. 마차도는 2월말에야 10년 3억 달러에 계약했고. 보라스의 고객인 하퍼도 3월3일에야 계약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마차도와 하퍼의 총액을 뛰어넘는 금액이 보라스의 손에 의해 12월초에 시장에 풀렸다.
보라스의 ‘머니게임’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자금력을 갖춘 구단들이 이제는 유명 베테랑 선수들로 전력을 보강해 가능성을 높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고 협상 전략도 과거와 같이 더 공격적으로 바꿨다. 구단들이 다시 FA 영입에 거액을 투자하는 시기로 돌아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특급 선수들을 고객으로 보유한 최장점을 활용해 구단들의 상황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보라스가 콜의 계약을 가장 먼저 성사시켜 스트라스버그를 위한 시장을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워싱턴 잔류를 원한 스트라스버그를 하루 먼저 발표시켜 ‘역대 투수 FA 최고액’ 타이틀을 선사했다. 다음날 콜의 계약을 발표해 그 기록을 경신시킨 보라스는 콜을 영입하려던 과정에서 확인한 에인절스의 자금력을 활용해 그 다음날 렌던의 계약마저 성사시켰다. ‘USA투데이’는 “에인절스는 콜에게 3억달러를 베팅했다가 양키스에 뺏겼다. 그러자 보라스는 다시 돌아서서 에인절스에 렌던을 들이밀며 양자택일 하라고 했다”며 “보라스는 이 시장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변화를 준비한 구단들과 보라스 사단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다시 돈이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