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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스포츠IN] ‘학범슨’ 김학범 감독은 이런 지도자입니다

2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승전. 김학범 감독이 사우디를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에 성공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매 경기 미팅 때 감독님이 지시한 대로 이뤄졌다. 너무도 신기하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는 원두재(울산)의 소감입니다. 이 말은 모든 감독이 선수들에게 듣고 싶어하는 최고 찬사입니다. 감독의 분석능력, 대처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선수들이 인정한 말이니까요. 과거 김학범 감독 아래 공을 찬 김두현 등 많은 선수들도 비슷한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학범슨’은 쉼없이 공부합니다. 많은 팀을 맡는 동안 거의 매년 겨울마다 외국으로 축구를 보러 갔습니다. 명문 클럽, 선진국 등 안 가본 나라, 안 본 리그가 거의 없습니다. 경질된 뒤에도 공부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 감독은 대표선수 경력도, 프로 선수 경력도 없는 소위 축구계 비주류입니다. 백도, 줄도 없는 그가 승부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실력이었습니다. 강원, 성남, 광주를 떠난 뒤 (축구 기자가 보기에) 갈 만한 구단이 없어 보일 때도 그는 끊임없이 해외로 나가서 몇달 동안 선진 축구를 배웠습니다. 김 감독은 1960년생입니다. 최근 몇년 동안 K리그는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추세였습니다. 2년 전 김 감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공부하는 지도자는 젊다. 반대로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공부하지 않는 지도자는 이미 늙은 것이다.”

김 감독이 선발 멤버를 대거 바꾸면서도 전승 우승한 비결도 분석력입니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알고 상대를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운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운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따르면 실력입니다. 운도 실력이 있고 노력하는 이에게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김 감독은 발로 뛰는 지도자입니다. 주위 말을 믿고 선수를 뽑지 않습니다. 현장으로 가서 클럽에서 뛰는 장면을 분석하고 대표팀으로 불러들려서 직접 확인한 뒤 선발 여부를 결정합니다.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선발 당시 이강인과 백승호를 뺀 것도, 황의조를 뽑는 것도 여론이 아니라 자신의 눈과 판단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경기 승패에 따라 감독 목숨이 좌우된다. 이런 상황 속에 어떻게 인맥, 친분, 여론으로 선수를 뽑겠나.”

김 감독은 지금까지 1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직접 불러 테스트했습니다. 현장으로 가서 본 선수까지 합하면 족히 200명은 될 겁니다. 이번 우승을 일궈낸 선수들도 그렇게 김 감독이 발로, 눈으로 발굴한 원석들입니다.

2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승전. 사우디를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에 성공한 선수들이 시상식 뒤 김학범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감독은 정말 축구에 미친 사람입니다. 김 감독은 영등포중과 강릉농고, 명지대를 거쳐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습니다. 1991년 현역에서 물러난 6개월간 국민은행 퇴계로 지점에서 대리로 근무했습니다. 금방 과장으로 승진했고 지점장까지 가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국민은행 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주판을 놓으면서는 하룻밤도 샐 수 없었다. 그런데 축구 비디오를 보면서는 3일 밤도 샐 수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28일 귀국합니다. 도쿄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입니다. 올림픽 대표팀이 재소집되는 때는 3월입니다. 올림픽 남자 축구 대진은 4월20일 결정됩니다. 이후 18명으로 추려진 올림픽 대표팀은 6월 최종 소집됩니다. 그때까지 김 감독은 쉬지 않고 축구장을 다닐 겁니다. 그는 젊고 능력 있고 부지런하며 마음이 열린 지도자입니다. 도쿄올림픽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은 충실하고 빈틈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김 감독이 언성 히어로즈들과 함께 쓰는 ‘무명 신화’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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