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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 넘어, Beyond Olympics⑧]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의 일념 “대한민국에 올림픽 메달 안기겠다”

케냐에서 귀화한 마라토너 오주한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오주한이 지난해 10월 열린 2019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결승선에 골인하고 있다. 오주한은 이날 2시간08분42초를 기록해 도쿄올림픽 기준기록을 통과했다. 대한육상연맹 제공

‘한국을 위해 달리겠다’는 일념은 변함이 없다. 케냐에서 귀화한 마라토너 오주한(32·청양군청)은 2020 도쿄올림픽만을 바라바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귀화가 통과되고 올림픽 출전까지 이루어낸 그는 ‘제2의 조국’ 대한민국에 올림픽 메달을 안기겠다는 생각 뿐이다.

오주한은 오는 8월 도쿄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을 대표해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다. 오주한은 지난해 10월 열린 2019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8분42초의 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남자 마라토너 중 유일하게 도쿄올림픽 기준기록(2시간11분30초)을 통과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한국 선수로 올림픽 출전이 결정된 이후 그는 결전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 출전 과정은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케냐 국적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로 살아온 그는 한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면서 한국에서 새출발을 꿈꿨다. 잇달아 우승했던 ‘약속의 땅’ 한국을 위해 달리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발굴해 한국 무대로 인도했던 오창석 백석대 교수의 성(姓)을 따서 오주한(吳走韓)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만들고 청양군청 육상팀에 입단했다.

그는 2016 리우올림픽 출전을 노리며 특별 귀화를 추진했으나 육상계 내부의 일부 반대와 약물복용 논란 등으로 막혔다. 오주한은 2018년에 다시 한번 귀화를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해 9월 법무부의 허가가 떨어져 마침내 한국인이 됐다.

오주한이 케냐에서 진행된 훈련에서 자신의 후견인인 오창석 코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창석 코치 제공

오주한은 한국 국가대표로 공인받기 까지 힘들었던 과정 속에 2018년에 당했던 아킬레스건 부상 여파로 몸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라톤 세계 최강국 케냐에선 국가대표가 되는 게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는 자신을 받아준 새로운 나라 한국의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를 누빈다는 것에 고무됐다. 대한육상연맹도 그의 진정성을 알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에루페를 오주한으로 변신시키고 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오창석 교수를 이번 올림픽 마라톤 대표팀 코치로 정식 임명했다. 또 현재 케냐의 고지대에서 전지훈련 중인 오주한을 위해 현지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한국인 코치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오주한은 세계기록 보유자인 같은 케냐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가 훈련하는 케냐 엘도렛의 캅타갓 훈련 캠프에서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오창석 코치는 “오주한도 이번 올림픽이 일생 일대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늘 목표를 되새기며 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주한은 케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충남 청양군의 새집에 들어간다. 오창석 코치와 공동 명의로 짓고 있는 집이 다음달 말에 완공된다. 오주한은 가족들까지 불러 ‘한국인 오주한’으로 계속 살아갈 터전을 갖게 된다.

이후 올림픽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에서 메달 도전은 쉽지 않다. 오주한의 개인 최고 기록 2시간5분13초(2016년 서울 국제마라톤)은 세계 최고 수준에는 3~4분 정도 뒤지지만 올림픽에서는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 국가별 쿼터가 정해져 있고 무더위 속에 진행되는 올림픽은 대개 기록보다는 순위경쟁 흐름으로 진행된다. 더위가 극심했던 4년 전 리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딴 세계기록 보유자 킵초게의 당시 기록이 2시간8분44초였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무더위 적응과 레이스 운영이 메달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창석 코치는 “오주한이 2년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오랜 슬럼프를 겪다가 이제 정상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면서 “오는 3월 서울 마라톤에서 컨디션을 점검한 뒤 본격적인 올림픽 대비에 집중해 최상의 상태를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스포츠사(史)에서 마라톤의 위상은 특별하다. 일제 강점기 손기정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제패는 식민지의 울분을 떨쳐버리는 쾌거였지만 국제 스포츠사에는 일본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슴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1992년 황영조의 바르셀로 올림픽 제패로 한국 마라톤이 다시 세계에 우뚝 섰고, 4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가 은메달을 따내며 전성기가 이어졌다. 이후 한국 남자 마라톤은 깊은 침체에 빠졌다. 2000년에 이봉주가 작성한 2시간7분20초의 한국기록은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귀화선수 오주한도 이런 한국 마라톤의 역사와 자신의 역할을 잘 안다. 일본에서 한국 마라톤의 새로운 역사를 쓰길 꿈꾸며 오주한은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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