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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라미란 “조연→주연, 전 독보적인 여배우죠”

배우 라미란, 사진제공|NEW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30대가 지난 나이에 단역으로 시작해 조연, 그리고 단독주연까지 꿰차며 ‘늦복’이 제대로 터진 여배우, 바로 라미란이다.

“맞아요. 그 부분에선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죠. 늦은 나이, 이런 외모로 시작해서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는 거의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다들 ‘라미란, 라미란’ 하는 게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잘 가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언제까지 별탈없이 갈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충무로에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는 한 저도 거기에 섞여서 살아야죠. 그래야 저뿐만 아니라 숨어있는 배우들이 발굴될 수 있는 작품도 나와야 하고요.”

라미란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원톱으로 나선 신작 ‘정직한 후보’(감독 장유정)에 대한 애정과 ‘라미란’이란 이름값, 나문희·김무열·윤경호 등과 합을 맞춘 소감 등을 공개했다.

영화 ‘정직한 후보’ 속 라미란과 윤경호.

■“윤경호와 격정적인 키스신, 스릴러 같던데요?”

이번 작품에서 윤경호는 그의 남편으로, 김무열은 그의 보좌관으로 출연했다.

“처음 윤경호가 남편 역에 캐스팅됐다고 해서 반신반의했어요. 보좌관으로 김무열 뽑아놓고 남편 역에 경호를? 하하. 농담이고요. ‘응답하라 1988’ 김성균 이후 또 다른 ‘연하남’과 부부 연기를 한 거예요. 저보고 누나라고 하는데 처음엔 잘 안 믿기더라고요. 하지만 현장에선 제가 여기저기 판을 벌리면 윤경호가 하나하나 다 주워서 마무리하는 ‘찰떡 호흡’이었어요.”

그와 키스신 촬영은 아직도 재밌는 기억이란다.

“경호에겐 아마 첫 키스신이었을 거예요. 촬영 전날 갑자기 ‘준비 열심히 해오겠습니다’라는 거예요. ‘대체 무슨 준비를 한다는 거지?’ 의아했는데, 막상 키스신을 찍으려고 하니 수염이 까끌까끌하게 자라나 제 턱만 다 쓸렸죠. 그만큼 격정적으로 연기했으니까요. 제가 그토록 원했던 멜로 연기를 윤경호와 한 거네요. 지금 보니까 키스신은 스릴러가 된 것 같지만요. 분명 뽀뽀하는 장면인데 왜 목을 조르는 느낌이 날까요? 그런 장면이 의외의 재미를 안긴 것 같아요.”

나문희와 작업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극 중 제가 얻어맞는 장면이 있는데, 그거 진짜 다 맞은 거예요. 나문희 선배 손이 진짜 맵더라고요. 맞아서 ‘악’ 소리가 나는 것도 모두 실제예요.”

단역 시절 ‘육혈포 강도단’에서 만났던 나문희와 지금 너무 많은 게 달라졌다고도 했다.

“제가 그 영화에서 인질로 출연했는데, 그땐 정말 선배가 무서웠어요. 자신의 촬영이 아닌데도 후배들 연기하는 걸 지켜보고 조언까지 해줬거든요. 후배들은 ‘저 선배한테 걸리면 안 돼!’라고 다들 떨었는데, 이번에 만나니 ‘난 이제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 안 해’라고 선언하더라고요. 저한테 ‘예쁘다’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요. 선배의 귀여운 면도 여전하더라고요.”

김무열에겐 ‘재발견’이란 단어를 썼다.

“그런 코믹한 느낌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악인전’ ‘머니백’ 같은 작품을 봐와서 액션 잘하는 배우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막상 만나니까 의외였어요. 코미디도 잘 하고, 자신이 웃기다는 걸 잘 알고 있더라고요. 코믹 연기에 최적화된 사람이었어요.”

■“뜨고 나면 변한다고요? 당연한 얘기죠”

단역부터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온 ‘모범생’이다.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조역과 영화 전체를 이끄는 주역 사이 어떤 것이 더 몸에 잘 맞을까.

“부담 없는 게 당연히 좋죠. 더 편하게 놀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생각은 이전보다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부담도 안 느끼려 마인드 콘트롤도 하고 있고요.”

‘뜨면 변한다’는 시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다.

“저도 많이 생각해봐요. 내 모습이 많이 변했나. 연예인이 갑자기 뜨면 변한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날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이 바뀌고, 날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또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변해보일 수 있기도 하잖아요. 저도 46살이니 그간 쌓인 노폐물도 있을 거고, 아홉살 때 마냥 순수하진 않겠죠.”

그런 자아성찰마저도 다 경험이고 재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인생엔 큰 풍파는 없었어요. 만약 그렇게 막 살았다면 더 폭넓게 연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표현의 깊이가 조금은 더 달라졌겠죠. 그래서 힘든 시기의 사람들이 고민을 상담하면 전 늘 그렇게 말해요. 극단적인 경험을 일부러 할 순 없지 않으냐. 이 힘든 시간도 결국 다 재산이 될테니 삶 구석구석에 잘 쟁여놓으려고요.”

‘코미디의 장인’이란 수식어도 이젠 잠시 내려놓고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코미디의 장인’이라고 하면 ‘그래, 얼마나 웃길지 한 번 보자’라는 식으로 보게 되잖아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니 그런 수식어보다는, ‘라미란은 이번에 또 뭘할까’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배신감 들지 않는 연기를 하면서 ‘라미란은 뭔가 달라’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악역이요? 지금까지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좋은 캐릭터라면 당연히 도전해보고 싶어요. 멜로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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