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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캠프 직격인터뷰] ‘KK’ 김광현의 다짐…“잠겨있던 ML의 문 열어볼게요”

세인트루이스 김광현이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딘스타디움에서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한 뒤 퇴근하며 인사하고 있다. 주피터 | 김은진 기자

사흘 전에는 없던 뾰루지가 나 있었다. “물갈이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머나먼 외국의 새 리그 새 팀에서 새 동료들과 출발해야 하는 마음이 부담과 긴장을 느끼지 않을 리는 없다. 그래도 표정이 환하다. 정말 가고 싶었던 길을 드디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룬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은 웃음도 말도 많아졌다. 여전히 영어가 큰 걱정이지만 그래도 그간 한국에서 외국인선수들과 소통했던 ‘기본기’에 밝은 성격을 더해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이제 일주일 뒤인 23일이면 뉴욕 메츠와 시범경기에서 메이저리거로서 첫 실전을 준비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KK’가 어떤 투수인지를 보여줘야 하는 중요한 등판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딘스타디움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김광현을 지난 16일 만났다. 일과를 정리하고 퇴근길에 만난 김광현의 마음 속에는 설렘과 긴장, 여유 속에 책임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설렘, 개막이 기다려진다

지난 13일 세인트루이스 투·포수 첫 소집일에 김광현은 취재진을 몰고다녔다. 훈련장을 이동하고 움직일 때마다 한국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락커룸에 들어가자 선수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나치는 선수들마다 전부 “한국에서도 원래 이랬느냐”고 신기해했다. “내가 처음 와서 그렇다. 정규시즌 때는 이렇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지만 놀라워하는 메이저리거들의 시선은 첫날 위축될 뻔하던 김광현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김광현은 “나를 보러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 많은 데 대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자랑스러울 것 같다며 부러워하더라. 그런 말을 들으니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고 며칠 뒤에는 취재진 수가 확 줄어든 것을 보고 선수들이 또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졌느냐’고 궁금해했다. ‘현진이 형한테 간 것 같다’고 했더니 다들 ‘아하’ 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웃었다. 그렇게 한 명씩 두명씩 이야기 나누고 웃으면서 김광현은 며칠 사이에 선수단 속으로 바로 흡수도고 있다.

몸 상태도 좋다. KBO리그에서 뛰던 때에 비하면 피칭을 시작하고 실전에 들어가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다. 그러나 건강한 팔 상태를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정규시즌 데뷔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광현은 “피칭 준비가 빨라진 것보다는 지난해에 오랜만에 많은 이닝을 던져서 오히려 그 부분을 걱정했는데 팔은 아주 괜찮다”며 “늘 몸이 자신있으면 시즌을 빨리 시작하고 싶은 기분으로 캠프를 치렀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빨리 개막해서 던지고 싶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 김광현이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딘스타디움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주피터 | 김은진 기자

■성숙, 경쟁의 의미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은 꿈을 이룬 대신 조금은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난생 처음 ‘선발 경쟁’이라는 타이틀이 김광현의 이름 앞에 붙었다.

데뷔하자마자 에이스로만 불려왔던 김광현이기에 지금 세인트루이스에서 겪고 있는 경쟁 상황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KBO리그에서는 이미 최고를 찍어 아프지만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투수가 안정된 상황을 두고 새 자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거친 도전을 택했다는 것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의 큰 의미다.

김광현은 “한국에서도 매년 경쟁한다 생각하고 야구했다. 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지만 어쨌든 나는 전보다 더 성숙해졌고 노련해졌고 가장 힘이 있는 지금 이 곳에 오게 된 것이 정말 좋다”며 “그래서 SK 구단에 감사하다는 말은 몇 번 해도 부족한 것 같다.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수술도 하고 우승도 네 번이나 하고 잘 할 때도 못 할 때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느냐를 지켜보는 시선 속에서도 김광현은 여유로울 수 있다. 진짜 가고 싶었던 길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광현은 “데뷔후 13번의 시즌을 보내고 14번째 시즌을 맞이하는데 정말 가장 많이 설레는 시즌”이라며 “너무 들뜨면 시즌을 망칠 수도 있으니 최대한 평소와 같다 생각하고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선발 경쟁에서는 물론 이기고 싶다. 그러나 물러나 중간 계투로 시즌을 맞이하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제 출발하는 선수로서 에이스, 선발, 최고라고 불리는 데 대한 욕심을 모두 내려놨기 때문이다.

김광현은 “당연히 선발을 하고 싶고, 자리를 따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보직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내 실력만 잘 보여줄 수 있다면 중간계투로 시작해도 아무 상관 없을 것 같다”며 “차차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시작해서 올라간다고 하면 패전처리조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테니 충분히 보여주겠다. (첫 실전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잘 만들어서 좋은 컨디션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 김광현이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딘스타디움에서 훈련을 모두 마친 뒤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고 있다. 주피터 | 김은진 기자

■책임감, 한국 투수들의 열쇠가 되고 싶다

김광현은 스프링캠프를 시작하자마자 류현진(토론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퇴근부터 생각이 다른 메이저리거들의 문화를 물었고 조언을 받았다.

KBO리그 최고의 자리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FA 대박까지 이룬 류현진의 성공은 많은 후배 투수들의 이상향이다.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한 이후 많은 한국 선수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투수들의 도전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류현진 역시도 미국에서 부상과 수술, 재활을 거치고 때로는 선발 경쟁도 버텨내야 했다. 진입부터 생존까지가 결코 쉽지 않은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 길, 류현진 이후 7년 만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행한 투수 김광현은 그 길을 정말 잘 닦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KBO리그에서 라이벌로 불려온 양현종(KIA)도 다음 겨울 해외 진출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김광현은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김광현은 “1년 먼저 온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진이 형이 온 이후로 멈춰있었는데 한국 투수들이 계속 진출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잠겨있던 메이저리그의 자물쇠를 내가 열고 싶다”고 말했다. 실력이 최우선이지만 한국 선수들의 평판을 좌우할 성실한 자세와 바른 성품도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김광현은 잘 알고 있다.

KBO리그 출신 메이저리거의 ‘선구자’인 류현진이 포스팅시스템으로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진출해 성공했다면, 김광현은 30대 초반을 지나는 지금 명예와 안정을 뒤로 하고 다시 도전에 나섰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

김광현은 “한국에서 잘 뛰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외국인 투수들도 많은 시대다. 한국에서 통하는 투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나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뛰겠다. 진짜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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