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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스포츠IN] 스포츠계 종사자 여러분, 힘을 냅시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 1년 연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진천선수촌이 휴촌에 들어간 지난 2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웰컴센터 앞에서 사격 이권국이 퇴촌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스포츠계 종사자들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 발전보다는 한계를 절감하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주말에는 ‘4·15 총선, 체육 공약 실종’이라는 기사를 보고 속상했습니다. 정당별 정책을 확인해보니 체육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정치인들은 스포츠를 외면합니다. 무지해도 알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거대 정당들도 체육계 표를 모으려는 구색 맞추기, 미끼성 공약 정도만 내놓습니다. 체육 정책이 아예 없는 정당도 있습니다. 최악의 운동 부족 국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도 다른 어떤 분야에 비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부는 유독 스포츠에 대해서 규제 위주, 제한 위주로 움직였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스포츠계를 범죄집단 다루듯 엄중한 처벌과 징계를 운운하면서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그런 정부가 스포츠계가 도와달라고 손짓하는 이때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최근 댓글 정책을 수정했습니다. 고의적인 악성댓글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일반 뉴스’엔 댓글 이력을 밝히게 하고 ‘연예 뉴스’엔 아예 댓글을 달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기사에 댓글은 익명으로 달 수 있고 댓글 이력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회사 후배 이용균 기자는 “스포츠 종사자들은 욕먹어도 되는 존재로 보는 모양”이라며 괴로워합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모바일 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인터넷·IT, 종합지, 방송 통신, 경제지 등 4개만 언론사로 인정했습니다. 네이버의 ‘눈’에 스포츠신문은 ‘언론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스포츠가 세상과 사람을 바꿀 힘과 가치를 지녔다는 일념으로 기레기라는 비난 속에서도 버텨온 체육기자 선후배들이 당시 받은 충격에 지금도 머리가 혼미합니다.

지난 2월 교육부는 ‘2020년 학교체육활성화 추진 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체육수업, 학교스포츠클럽, 학교 운동부에 대한 기본 지침과 개선안, 정책 방향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정규 체육 시수를 확대하겠다” “초등학교 체육 교사를 육성해 배치하겠다” “학교 운동부들이 학업 부담 속에서도 운동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 “스포츠와 관련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는 체육 교사들을 챙기겠다”는 말은 없습니다. 체육수업이 아예 없는 초등 1·2학년생과 체육이 누구보다 필요한 장애 학생을 위한 대책은 아예 언급조차 없습니다.

기자는 1999년부터 딱 1년만 빼고 체육기자로 일해왔습니다. 그동안 사회에서, 조직에서, 모임에서 스포츠가 ‘주변화’되는 걸 자주 느꼈습니다. 정치하는 것, 돈 버는 것, 출세하는 것, 라인 만들어 줄을 대는 것, 술 먹고 노는 것에 대한 화제가 고갈됐을 때 스포츠가 그 묘한 침묵을 깨는 찰나의 도구로 사람들 입에 너무나도 가볍게 오르 내리는 걸 자주 봤고 겪었습니다. 마치 횟집에서 회가 떨어져야 비로소 젓가락질을 받는 밑반찬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체육기자로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스포츠는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체육은 인간이 더불어 사는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공정하고 정당한 사회가 되리라고 믿고 기대하면서 말이죠.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 문이 코로나로 인한 프로농구리그가 중단됨에 따라 폐쇄됐다. 연합뉴스

적잖은 사회 고위층들이 스포츠를 무시해도 체육기자들은 희망을 잃을 수 없습니다.

체육 교육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소중한 체육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는 양질의 체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각자 개발한 커리큘럼을 대가없이 공유합니다. 체육 쪽에서 일하고 싶은 제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진로를 직접 개척하려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체육을 중시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증가합니다.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체육 정책이 없는 유아체육과 노인체육을 붙잡고 연구하는 교수들도 있습니다. 스포츠와 뭔가를 결합한 융복합적 상품을 만들기 위해 스포츠계로 넘어오는 공대·의대·정보통신계 전문가들도 늘고 있고요. 스포츠클럽을 이곳저곳 바쁘게 옮기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강사들이 많습니다.

초등학생 1순위 장래 희망이 스포츠 스타랍니다. 지난해 초등 학부모 사교육비 중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게 체육 분야입니다. 대학 수험생 55만명 중 매년 스포츠 관련 학과로 가는 학생들이 4만명입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열독율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가 스포츠입니다. 해외 리그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풀뿌리 우리 스포츠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막강한 힘과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점령하는 해외 브랜드에 맞서 양질의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으로 한국을 알리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예까지는 들고 싶지 않지만) 미국, 영국 명문대 입학을 겨냥해 어린 자녀에게 아이스하키, 승마, 조정, 골프, 축구를 시키는 부유층도 부지기수입니다.

스포츠기자들은 다시 용기와 힘을 냅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길 바랍니다. 스포츠가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고, 사람이 더불어 사는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으며 사회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바꾸기 위해 울림을 주고 있다는 걸 우린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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