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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의 정석’ 가호 “다채롭고 자유로운 ‘가호팝’ 기대해주세요 [인터뷰[

스타는 하루아침에 태어난다. 하지만 태어날 때까지 웅크리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가수가 인정받고 성장해 하나하나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을 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최근 이렇게 스타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고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가수의 등장은 드문 일이었다. 대중은 차트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면 ‘사재기가 아니냐’며 힐난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러한 불신 속에서도 새로운 싹은 움트고 생장을 시작한다. 가수 가호가 그런 경우다. 2018년 힙합 알앤비(R&B)레이블 ‘플라네타리움 레코드’ 출신으로 데뷔한 가호는 레이블 앨범,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등에 차근차근 참여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이 부쩍 알려진 것은 최근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 때문이었다. 가호가 부른 설레는 분위기의 노래 ‘시작’은 방탄소년단, 아이유, 지코 등 내로라하는 차트의 강자들을 제치고 주요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겪는 큰 유명세에 얼떨떨한 기분도 있었지만 가호는 금세 평정을 찾고 자신의 길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현실적이죠. 몇 년 전에는 차트에서 1등을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막연하게 들었는데 정말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훅’ 들어왔어요. 아직 공연이나 행사를 많이 못해서 주변 분들에게만 말씀을 듣고 있는데 그래도 저보다 회사 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미리 계획했던 행보는 아니지만 공교롭게 가호는 차트 1위 석권 이후 곧바로 기세를 자신의 음반으로 이어가게 됐다. 그는 27일 오후 6시 싱글앨범 ‘어 송 포 유(A Song For You)’를 낸다. 데뷔 후 처음으로 그의 이름으로 된 노래 두 곡을 한꺼번에 내는 결과물이다. 곡 초반 아카펠라로 음을 다지면서 가스펠 느낌도 내는 과감한 편곡이 돋보이는 ‘어 송 포 유’와 점점 고조되는 감정선이 인상적인 ‘뷰티풀(Beautiful)’ 두 곡이 수록됐다.

“팝 기반의 음악입니다. 다른 부분도 신경을 썼지만 특히 이번에는 멜로디와 편곡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들으시는 분들이 ‘익숙한 느낌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소한 팝이다’하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흔히 퀸이나 마이클잭슨의 음악을 들어도 팝인데 뚜렷한 개성이 느껴지는, 규정되지 않는 음악이잖아요. 굳이 이름을 짓자면 ‘가호팝’이 아닐까 합니다.(웃음)”

‘시작’을 비롯한 그의 OST 참여 전력은 화려하다. 드라마 ‘시간’ ‘내 뒤에 테리우스’ ‘황후의 품격’ 등에서 목소리를 들려줬다. 이번에 막을 내린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목소리가 화면을 수놓기도 했다. OST는 드라마의 음악 감독이 극의 내용과 노래의 느낌을 정교하게 설계해 그에 맞는 목소리를 찾는 계산의 산물이다. 하지만 가호가 직접 만드는 노래는 그의 창의성이 훨씬 많이 녹아난다. 그는 두 가지 형태의 작업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OST는 제 목소리를 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배경으로 들려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평소에 부르던 스타일로 안 부르게 돼요. 뭔가 배우들과 합을 맞춰서 극을 이끈다는 느낌이 있어 참 좋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끝나서 너무 아쉬워요. 모든 제작진과 참여한 배우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고요. 제가 처음 1위를 한 곡이 들어있긴 하지만 많은 분들에게 삶의 활력을 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좋은 것 같아요.”

1997년생으로 작곡가를 꿈꿨던 가호는 학창시절에는 작곡이나 노래 못지않게 게임에도 도가 튼 아이였다. 게임 캐릭터로 쓰기 시작한 ‘가호’가 어느새 별칭이 됐고 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단어가 됐다. 보통 작곡가가 가수에게 곡을 줄 때 가이드 보컬로 그냥 한 번 불러서 주는데 많은 가수들에게 자신의 느낌이 가 닿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답답하니 그냥 내가 부른다’고 시작했던 가수로서의 도전이 이제는 그의 운명이 됐다.

“일찍부터 보컬을 갈고 닦았던 제 또래 가수들과 다르게 저는 늦게 노래를 시작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녹음은 괜찮지만 콘서트를 하고, 투어를 하는 등 목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보컬 레슨을 꾸준히 받고 있어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아질 부분도 많은 거니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연을 하고 있지 않으면 작업실에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틀어박혀 곡을 써내는 일을 좋아한다. 하다가 막히면 그냥 놀기도 하는 여타 뮤지션들과 달리 그는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으면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물 만 마시고, 화장실 만 가면서 곡에 매달린 적도 많다. 하지만 이번 1위 등극을 계기로 정말 가수로서의 인생을 길고, 그 안에서는 힘을 잘 안배해서 달려야 하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높은 순위를 꿈꿨을 때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 1위를 해보니까 정말 준비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기회도 주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쨌든 가수가 잘 되고, 안 되는 시기는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이니 현실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죠. 비록 지금 분위기 때문에 많은 분들과 공연장에서 호흡할 수 없지만 이번 계기로 저를 알게 되신 분들에게는 저의 지난 곡과 저의 앞으로 나올 곡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태어난다. 하지만 모두가 잉태되는 과정을 거친다. 바로 한 달 후의 가호, 1년 후의 가호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스타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그 자격은 준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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