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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로니에를 30년 지킨 버스커, 윤효상 “웃음을 주고 희열을 받죠”

가수 윤효상, 사진제공|종로문화재단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목소리가 있다. 무기라곤 오로지 통키타 하나와 인이 박힌 목소리 뿐. 마로니에 공원을 30년 이상 지킨 버스커, 윤효상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마로니에공원 한켠에 서서 노래와 유머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긴다.

“30년 넘게 왜 이 일을 하냐고요? 에이, 안해본 사람은 그 맛을 모를 거예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야, 미쳤다고 해야하나. 하하. 정상적인 사람이 매일 길거리에 나와서 노래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전 당당하게 말합니다.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있다고요. 따지고 보면 제가 버스킹 1세대거든요.”

윤효상은 최근 ‘스포츠경향’과 만난 자리에서 버스킹을 하게 된 계기부터 잊을 수 없는 순간들, 그리고 버스킹 파트너 김철민에 대한 애틋한 감정까지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우연히 시작한 버스킹, 사람들이 웃을 때 희열 느꼈죠”

버스킹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전역한 뒤 할 일 없이 대학로에 왔는데 심심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500원씩 줄테니 날 따라하라고 장난처럼 군대 제식 훈련을 시켰는데 사람들이 엄청 즐거워하며 모이더라고요. 아이들도 크게 웃고, 저도 재밌었죠. 그러다 기타를 치는 친구를 따라다니며 노래도 하고 장난도 치다가 지금의 공연 형태로 발전됐어요. 사람들이 박장대소할 때, 그 웃음이 제게 희열을 주더라고요.”

원조 버스커다. 그는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버스킹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엠프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란 대답을 내놨다.

“사람들에게 웃음이 필요하긴 하지만 배려심 없게 엠프를 크게 들어버리면 오히려 소음이 되고 말아요. 전 30년간 줄곧 엠프를 안 쓰고 목청 하나로 노래했기 때문에 계속 버스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많은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느 노부부의 데이트였다.

“머리가 하얗게 샌 내외가 항상 손을 잡고 마로니에공원에 나와서 제 공연을 봤어요. 재밌다고 하면서 늘 제 기타 케이스에 1만원을 넣고 갔죠. 그럼 전 다시 노부부에게 택시비로 돌려 드렸어요. 나이가 들어도 웃고 싶은 마음은 똑같으니 매번 제게 오는 거였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할아버지가 안 오시더라고요. 할머니는 딸과 오기 시작했고요. 이유는 묻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요. 이젠 그 할머니도 더이상 오시지 않아요.”

■“수십년 함께한 김철민, 제겐 부부 이상이죠”

최근 폐암으로 투병 중인 김철민과는 수십년 함께 버스킹을 이어온 ‘콤비’였다. 지금은 건강 상의 문제로 김철민 없이 홀로 거리로 나서지만 그의 마음 속엔 늘 김철민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제겐 부부 이상인 친구예요. 만나면 싸우는 톰과 제리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요. 애정을 넘어 애증이 있죠. 그런데 그런 녀석이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와서 ‘형, 나 폐암 말기래’라고 하는데, 한동안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 뒤로 3개월간 노래도 못했고요. 한동안 눈물만 흘렸죠.”

안타깝고 허탈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건 자부심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혼자서라도 이 문화를 지켜야한다고요. 30년 역사를 이어왔는데, 저라도 지켜내야하지 않겠어요? 2살 때 제 공연을 본 친구가 서른 살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저 아저씬 젊어서도 저렇게 노래하더니 아직도 하네. 진짜 대단하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더불어 앞으론 마음이 병든 이들에게 ‘내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거리로 나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가족과 세 아이는 최고의 지원군이다.

“아들 둘, 딸 하나 있는 아빠기도 해요. 얼마 전에 아들 두 놈이 대학로로 왔길래 함께 술 한 잔 했는데, 큰 놈이 그러더라고요. 아빠가 최고라고. 제 든든한 원동력이죠.”

그에게 대학로는 명소 이상의 존재다. 사랑스럽고 아껴야할 곳, 그리고 세상을 떠나더라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곳이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서도 말했다.

“내가 웃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남과 함께 웃어서 행복한 거잖아요. 저도 긴장된 마음으로 나와도 막상 사람들 앞에 서면 즐거워서 미쳐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고 공연을 마친 뒤 곱씹어보며 친구와 수다떠는 게 제 작은 행복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대학로에 설 거냐고요? 당연하죠. 빨간 벽돌 건물보다도 더 높은 무대에서 노래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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