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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피플] “이젠 마담까지?”…이정은의 스펙트럼

KBS2 주말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 속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KBS

배우 이정은의 한계는 어디일까.

이정은은 5일 방송된 KBS2 주말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안팎으로 씩씩한 ‘강초연’으로 첫 등장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단란주점에서 진상 부리는 고객이 나타나자 강력한 한마디로 제압하는 ‘센 언니’로 출연, 시작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볼륨 가득 넣은 머리스타일에 화려한 의상까지 소화하며 ‘역시 이정은’이라고 절로 감탄할 만큼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딸을 버린 사연 많은 어머니(‘동백꽃 필 무렵’), 음흉한 가사도우미(‘기생충’), 속 모를 고시원 주인(‘타인은 지옥이다’)에 이어 또 한 번 변신에 성공한 셈이다.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속 이정은.

■4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도 뛰어넘는 캐릭터 소화력

이정은의 변천사는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에서부터 출발한다. 배우의 길로 발을 들인 그는 무대에서 연기 내공을 쌓다가 2001년 ‘와니와 준하’로 처음 영화계에 노크했다. 그러나 2009년 ‘마더’에 출연하기까지 약 8년여 스크린 공백을 겪어야 했다. 이후 ‘전국노래자랑’ ‘변호인’ ‘카트’ ‘그날의 분위기’ ‘검사외전’ ‘좋아해줘’ ‘재심’ 등 여러 작품에서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가열차게 달려왔다.

안방극장에 얼굴을 비친 건 2014년 ‘사랑만 할래’부터다. ‘오 나의 귀신님’ ‘송곳’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쌈, 마이웨이’ ‘미스터 션샤인’ ‘눈이 부시게’ ‘타인은 지옥이다’ ‘동백꽃 필 무렵’ 등 그가 거친 히트작만해도 10편이 넘는다.

재밌는 건 그가 맡은 역의 연령대가 널을 뛴다는 점이다. 대부분 배우들은 자신의 연령대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길 마련인데, 이정은은 70대 노역도 맡을 만큼 캐릭터 소화력이 어마어마했다. 제작진이 느끼기에 ‘아무 역이나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란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나이보다 높은 배역들을 주로 맡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기생충’ 인터뷰 당시 만난 이정은은 “재밌다. 난 좀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날 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좋다. 변신하는 기분이 꽤 괜찮다”고 말해 웃음을 전하기도 했다.

‘기생충’ 속 이정은과 박명훈.

■이정은의 1인3색

그가 맡은 숱한 배역들 중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건 역시나 ‘기생충’ 속 문광 역이다. 반전의 키를 쥔 인물이기도 했지만, 단시간내에 격렬한 변화를 겪는 터라 섬세한 표현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배역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재현해냈다. 봉준호 감독은 “목소리의 마술사다. 표현력이나 음색 변화, 목소리가 씹히는 느낌까지 제대로 낸다. 드라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역인데, 이정은만이 할 수 있었다”고 그에 대한 단단한 신뢰를 보였다. 실제 톰 행크스도 “오리지널 하우스 키퍼(가사도우미 문광)가 늦은 밤 벨을 누르는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속 이정은.

지난해 전국을 ‘동백 신드롬’으로 물들였던 ‘동백꽃 필 무렵’ 정숙 역도 많은 이가 기억하는 ‘이정은의 얼굴’이다. 극 중 ‘동백’(공효진)을 버린 친엄마로 등장한 그는 공효진과 10살밖에 차이가 안 나서 엄마로 보일까 걱정했다며 엄살을 부렸지만, 특유의 맑은 눈빛과 깊은 연기력으로 많은 이를 쥐락펴락했다. 드라마가 흥행고공행진을 하는 데엔 그가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도 한몫했다.

‘타인은 지옥이다’에선 순한 얼굴로 스릴러도 해낸다는 걸 보여줬다. 그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에덴고시원 주인 ‘엄복순’으로 나와 극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섬세한 표정 연기부터 살벌한 살인마 연기까지 모두 해낸 그는 보는 이에게 ‘신스틸러’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인지시켰다.

OCN ‘타인은 지옥이다’ 속 이정은.

이처럼 장르, 연령대 허들을 너무나도 쉽게 뛰어넘으니 많은 감독들이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이정은은 “연출부 출신 배우라 감독들의 의도를 잘 알아듣는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응원해주니 사랑받는 게 아닐까”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은 대부분 “다음에 또 일하고 싶은 배우 일순위”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다.

그의 스펙트럼은 광고계까지 뻗어가고 있다. 헬스 케어 전문 기업 광고 모델로 발탁돼 이정재와 호흡을 맞추는가 하면, 청춘스타만 맡는다는 커피 광고 단독 모델로 발탁돼 광고를 찍기도 했다. 친근한 이미지와 어떤 역이든 찰떡처럼 소화해내는 팔색조 매력이 광고계에도 통한 셈이다.

“시대를 잘 만났다. 옆집 여자 같은 친근함 때문에 함께 힘을 합치고 싶다는 시대적 요구를 타서 대세가 된 것 같다”고 유머를 던질 줄 아는 이정은. ‘대기만성’ 대세 스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넓은 반경을 그려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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