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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비하인드]KBO 기록정정 뒷얘기 “전준호 ‘숨은 도루’ 없나 찾았다”

1996년 9월20일 롯데-해태전 기록지. 1번 타자 전준호가 8회 대타 박종일로 교체됐고, 박종일이 10회 도루에 성공했다. 그러나 오른쪽 박스에 이 도루가 전준호의 기록으로 집계되는 오류가 있었다. KBO는 이 실수를 발견하고 전준호 NC 코치의 통산 550도루를 549도루로 정정했다. KBO 제공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일 1982~1996년에 열린 6168경기 기록을 검증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강철 KT 감독, 한화 정민철 단장과 한용덕 감독, NC 전준호 코치 등 한국 야구 전설들의 기록을 바로잡은, 역사적인 결과물이었다. 8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남정연 KBO 홍보팀장을 만나 과거 15년치 기록을 검증한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무오류 향한 17년의 노력

KBO가 야구 기록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였다. 경기 중 기록원이 ‘뷰어’라는 전산기록지에 경기 내용을 입력하면 이 기록이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로 바로 전송돼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되고 있다.

2000년까지는 이런 시스템이 없었다. 기록원이 전산 프로그램 ‘넷텀’에 경기 내용을 입력하면 KBO가 이를 종이로 출력해 월 단위로 제본한 뒤 서고에 보관하는 식이었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엔 기록원이 손으로 쓴 기록지를 보관하는 수준이었다.

KBO가 과거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다. 이보다 먼저 스포츠투아이가 1997~2000년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완료했고, KBO 역시 그 필요성을 느껴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1996년까지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에 뛰어든 것이다.

KBO 기록위원회가 실제 경기를 기록하듯 1982년 개막전부터 시작해 매 경기 1회부터 9회말 3아웃까지의 내용을 전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KBO 홍보팀과 스포츠투아이는 기록위원회가 새로 입력한 내용과 과거 기록지를 재차 삼차 비교 검토하면서 실수와 오타를 잡아내는 작업을 벌였다. 오류 없는, 100% 완전무결한 기록으로 복원하자는 게 목표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한 달치 기록지 분량이 B4 정도 크기의 종이로 약 10㎝ 두께에 달했다. 15년치 6168경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데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KBO가 종이로 출력, 제본해 보관하고 있는 1995년 5월24일 한화 투수 성적. 한화 정민철 단장과 한용덕 감독의 이름이 보인다. KBO 제공

■550도루가 549도루 되던 날

종이 기록지를 데이터베이스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과거 기록원의 오기와 실수가 1600여건 발견됐다. 대수비로 뛰다가 사라진 선수들부터 ‘레전드’로 남은 선수들의 기록 오류가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일부 선수들의 통산 기록 순위가 바뀌었다. 남정연 팀장은 “통산 1, 2위가 바뀌는 상황이 생길까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상위권 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 역사의 상징적 숫자 중 하나였던 전준호 코치의 통산 550도루가 549도루로 바뀌는 사태가 발생했다. 1996년 9월20일 광주에서 열린 해태-롯데전에서 전 코치의 대타로 교체 출장한 박종일의 도루가 기록지 우측 집계박스에 전 코치의 도루로 표시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남 팀장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놀라고 당황했던 순간이었다”며 “혹시 전 코치님의 도루 기록이 다른 선수에게 잘못 간 것은 없었는지 찾기 위해 기록지들을 샅샅이 뒤졌다”고 떠올렸다. 가능하다면 550도루 기록을 보존하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

반면 잃어버린 기록을 되찾은 사례도 있었다. 이강철 감독은 탈삼진 2개를 추가했고 자책점 1개를 줄였다. 한용덕 감독은 탈삼진 3개, 정민철 단장은 완투 기록 하나를 되찾았다. 정 단장은 남 팀장에게 따로 연락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2001년 KBO에 입사한 남 팀장은 경기 기록 시스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과도기에 걸쳐 있는 세대다. KBO의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로서, 이런 작업을 완료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는 “과거의 실수와 오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KBO가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세이버매트릭스 같은 새로운 통계, 가공된 기록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통계도 일단 과거 기록이 제대로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KBO는 데이터베이스화 과정에서 정정된 기록을 선수별로 따로 정리해 팬들이 한눈에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만들 계획이다. 또 프로야구 출범 40년을 기념해 정정된 기록을 반영한 기록 대백과를 2022년 출간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데이터베이스화는 KBO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의미가 적지 않은 일”이라며 “앞으로 100년, 200년이 흘러가도 야구관계자들과 팬들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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