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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뒤틀린 젊음 비틀린 욕망 ‘클럽 아레나’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에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스물한 살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스물일곱 살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여섯 번째 책은 ‘클럽 아레나’(최나욱 지음 / 에이도스)다. 이번에는 제원이 쓴다.

■2020년 4월 11일. 세희와 제원의 대화

제원:세희야! 세희야! 너 뉴스 봤어? 클럽이 사람들로 북새통이래.

세희:말이 되냐? 참 답이 없는 인간들이야. ‘코로나19 퍼트리기 대회’라도 여나? 젊은 사람은 걸려도 잘 안 죽는다니까 그러는 것 같은데, 자기가 걸려서 퍼뜨리는 건 괜찮다는 거야 뭐야.

제원:사람이 못된 짓을 하는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잖아? 무식하거나 나쁘거나. 그런데 이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봐야지.

세희:정말 치가 떨리는 범죄적 수준의 이기심이야.

제원:나는 이게 그냥 단속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극단화된 이기심이 있는 거잖아. 그것도 우리와 같은 청년 세대들에게 말이야.

세희:글쎄…, 모르면 읽고, 계속 궁리하는 수밖에 없겠지. 참 ‘클럽 아레나’라는 책 읽어 봤지? 대한민국 클럽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책 말이야.

제원:응. 연예인들의 성폭력 사건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때, 당시 강남클럽의 실체를 고발한 르포르타주잖아?

세희:지금껏 나는 기성세대만 끔찍한 줄 알았거든. 근데 우리 세대도 못지않게 끔찍하더군. ‘참담’이라는 단어가 어떨 때 쓰는 말인지 ‘클럽 아레나’를 보면서 처음 알았어.

■조명 아래 흔들리는 욕망 클럽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기이한 특징 중 하나는 룸살롱이나 클럽 신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란한 비트와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 소리, 흔들리는 조명 아래 뒤섞여 몸을 흔드는 사람들, 야릇한 옷차림과 비틀거리는 몸짓들. 클럽은 도시의 밤을 상징하는 곳이며, 많은 이들이 즐거운 욕망을 충족하는 장소다. 나도 성인이 됐을 때 호기심으로 클럽에 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춤사위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런 데에 뿌릴 돈도 없었다.

다행이지만 나에게는 클럽에 대한 선망이나 유혹 따위가 생기지 않았다. 클럽을 다녀온 친구들이 간밤의 열기를 무용담처럼 쏟아내는 것을 듣기는 했다. 이와 반대로 그런 경험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성인의 세계에 막 진입한 청춘들에게 클럽은 흥미로운 장소임이 분명하다. 청춘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클럽은 멋지고 뜨겁고 즐거운 장소이긴 하지만, 최근엔 그곳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더럽고 폭력적인 욕망이 폭로됨으로써 사회적 비난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버닝썬 사건’은 클럽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한국사회의 더러운 욕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버닝썬은 마약, 성거래, 착취, 폭력, 범죄가 벌어지는 곳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많은 미디어가 이 사건을 일부 일탈적인 특권계층의 부도덕성에 기인한 단편적인 문제로 취급함으로써 오히려 사건의 본질이 묻히고 말았다.

클럽 아레나 외부 전경
클럽 아레나 외부 모습.
클럽 아레나에 모인 젊은이들.
클럽 아레나 내부 모습
모든 것이 멈춘 후의 ‘클럽 아레나’ 뒷모습.

■‘클럽 아레나’

클럽 아레나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강남의 대표적 클럽이다. 르포르타주이자 사회학서인 ‘클럽 아레나’는 건축양식부터 시간·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이 특수한 장소를 분석한다. 그동안 클럽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왔지만, ‘클럽 아레나’는 클럽문화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지금의 클럽이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상징코드 중 하나’임을 알려준다.

먼저 아레나 테이블은 그곳에서 어떤 식의 비정상적 거래가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레나의 방문객은 작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가격이 붙는 테이블의 여부에 따라 스탠딩 게스트와 테이블 게스트로 나뉜다. 테이블의 가격은 결코 싸지 않지만, 소비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몇몇 스탠딩 게스트는 테이블 게스트의 소비에 편승한다. 이때 그들 간에는 묘한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테이블 게스트는 자신이 상대방의 성을 샀다는 착각에 빠지고, 반대로 스탠딩 게스트는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도 눈치만 보게 된다. 거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의 인격마저 성착취의 구조 속에서 상품화되는 것이 아레나의 현주소다.

또 아레나는 금기된 온갖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숨 쉬는 듯이 자연스럽고, 허영심에 눈먼 돈이 수없이 뿌려진다. 그중에서도 ‘돔 페리뇽 열차’ ‘샴페인 걸’로 대표되는 이들의 소비문화는 그 극단적인 모습에서 놀라움을 넘어 충격까지 안긴다. 짜릿한 일탈의 경험을 빌미로 성의 상품화가 용인되고, 돈을 무기로 한 잠재된 동물적 욕망이 아무런 통제 없이 발현된다.

클럽 아레나의 엄청난 매출이 알려주듯이 이곳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욕정의 꼭짓점’ 중 하나를 보여준다. 욕망이 통제 없이 끓어오르는 곳, 뿌려지는 돈 아래 성이 거래되고, 인간으로서는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될 일들까지 버젓이 자행되는 공간, 이제 우리가 클럽문화를 공론화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클럽 아레나’는 우리 안의 비틀린 욕망을 직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다.

■세희의 한마디

나는 클럽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어. 시끄러운 분위기도 별로고, 내 의사에 상관없이 모르는 누군가와 닿는 게 나는 정말 싫거든. 뭐 그래도 좀 궁금하기는 했는데…. 우리 세대의 문화니까 말이야.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왜 오늘날 같은 클럽문화가 형성됐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상징 권력처럼 작동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었어. ‘클럽 아레나’는 가장 본능적인 공간을 가장 냉철하게 살펴본 책이라 읽는 내내 흥미롭기도 했고 말이야. 이번 책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 사랑해 제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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