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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항나 “故 김수환 추기경, 종교 떠나 진정한 어른이죠”

영화 ‘저 산 너머’ 주연배우 이항나가 스포츠경향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꿈을 키워간 고 김수환 추기경의 7살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렸다./박민규선임기자

“고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를 떠나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이죠. ‘나를 밟고 가라’란 김 추기경의 유명한 말은 아직도 제겐 감동일 정도로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세대라서 그런지,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저 산 너머’에 출연할 수 있게 돼 영광이었고요.”

배우 이항나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실제 무교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시절을 다룬 신작 ‘저 산 너머’(감독 최종태)에 얼굴을 비칠 수 있게 돼 기뻤다고 미소를 지었다.

“만약 종교영화라고 생각했다면 출연을 선택하는 데엔 주저했을 것 같아요. 감독도 말하길, 모성과 아이, 신과 우리 내면의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거든요. 저도 그렇게 느꼈고요.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종교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 주저없이 출연했어요.”

이항나는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 추천으로 출연하게 된 특별한 인연부터, 영화 촬영 당시 무더위로 고생했던 기억들을 모두 꺼내놨다.

영화 ‘저 산 너머’ 주연배우 이항나가 스포츠경향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꿈을 키워간 고 김수환 추기경의 7살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렸다./박민규선임기자

■“봉준호 감독 추천으로 출연, 운명처럼 만났죠”

출연 제안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크리스마스라 명동성당에 산책을 나갔어요. 종교인은 아니지만 새해가 다가오니까 가족들과 기도라도 할까 해서요. 그 다음날 김 추기경 관련 시나리오를 보내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이게 운명인건가 싶기도 했고요.”

감독이 이항나에게 연락한 건 봉준호 감독의 추천 때문이었다.

“봉준호 감독 추천으로 캐스팅 했다고 하더라고요. 봉 감독과 최 감독이 연세대학교 영화동아리 멤버로 친분이 있었는데, 이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캐스팅에 대한 조언을 구했나봐요. 봉 감독이 평소 제 연극을 몇 번 봤다고 하더라고요. 사석에서 만났을 때도 ‘공연에서 많이 뵀다’는 말은 들었거든요. 왜 추천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하.”

막상 촬영을 들어간 현장은 ‘무더위’의 연속이었다.

“논산에 직접 밭을 심어 사계절 변화를 다 담아냈는데, 특히 지난해 폭염이 왔을 땐 ‘이러다 더위로 죽겠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죠. 옥수수밭 장면에선 소금을 조금씩 먹으면서까지 찍다가 결국 아역들 때문에 중단했다니까요. 대체 어떤 영화로 만들어지나 궁금했는데, 고생한 만큼 우리나라 풍광이 너무 아름답게 나와서 흡족합니다.”

영화 ‘저 산 너머’ 주연배우 이항나가 스포츠경향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꿈을 키워간 고 김수환 추기경의 7살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렸다./박민규선임기자

■“실제 저는 0점 엄마, 수유하는 중 공연 연습하기도”

위인의 엄마를 연기한다는 것에 부담감도 컸다.

“누가 되면 안되니까요. 또 한편으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니까 실제 인물과 제 안의 어떤 부분이 만나 새로운 앙상블이 나올 거란 기대감도 있었어요.”

전작 ‘나를 찾아줘’에선 아이들을 유괴·학대하는 ‘엄마’를 연기한다. ‘저 산 너머’와 180도 다른 얼굴이다.

“제 안엔 여러 얼굴이 있죠.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그걸 꺼내려고 노력하고요. ‘저 산 너머’에선 선한 얼굴을 많이 꺼내려고 노력했어요. 위인의 엄마지만 내 안에도 그런 면이 꼭 있을 거란 믿음으로 상황에 몰입하면서 제 기억 속 비슷한 느낌을 꺼내려 했죠. ‘나를 찾아줘’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재미있게도 동시기 공개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기업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에서도 또 다른 엄마로 나온다. 극 중 ‘기훈’에게 친구같은 편안한 엄마다.

“제가 극 중 유일한 여성배우예요. 아들과 맞담배 피며 자유로운 엄마를 연기했지만, 결국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애를 보여주죠. 실제 최우식이 반듯하고 상냥해서 저절로 아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첫 촬영장에서 마치 친한 사이처럼 ‘선배~’라고 다가오는데, 굉장히 귀엽고 재밌더라고요.”

영화 ‘저 산 너머’ 주연배우 이항나가 스포츠경향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 ‘저 산 너머’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꿈을 키워간 고 김수환 추기경의 7살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렸다./박민규선임기자

실제로 그는 어떤 엄마일까. 그는 묘한 웃음을 보였다.

“0점이죠, 뭐. 항상 ‘저 산 너머’ 엄마를 꿈꾸지만 영화 ‘4등’ 속 엄마가 되는. 하하. 다행히 제가 자유방임으로 커온 터라 제 자식에게도 비슷하게 양육하고 있어요. 다른 엄마에 비해선요. 또 워킹맘이라 못해주는 것도 많죠. 아이 낳자마자 바로 무대로 컴백해야해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수유할 땐 공연 연습과 겹쳐서 유축기를 가지고 다녔다니까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때도 많았어요.”

스스로 ‘이젠 늙었다’고 농담하지만 그에게도 분명 꿈이 있다.

“요즘은 일의 경계가 없으니까요. 제가 무대에서 연출을 활발하게 했었는데, 매체로 넘어와 카메라 앞에 서니 연기만 하는 내가 낯설게 보일 때도 많아요. 배우로서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하게 된다면, 이후엔 제가 써놓은 작품들로 연출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할 수 있겠죠. 그게 지금 ‘여자 이항나’가 꾸는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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