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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드라큘라’, 흡혈귀가 사랑귀가 된 까닭

설화는 버전(version)을 달리하면서 변주되고, 성장한다. 특히 귀신이나 괴물 이야기는 기나긴 역사를 가지며 전해지다 혼란한 시기에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소생하곤 한다.

서양에서 피에 대한 갈증으로 시달리는 흡혈귀(vampire)와 관련된 이야기는 잠들지 않는 전설이 되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채 다양한 문화적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살아 꿈틀댄다. 흡혈귀 이야기는 오랜 세월 떠돌다가 근대에 들어서 여러 편의 소설을 낳고, 수많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뮤지컬로도 공연됐는데,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드라큘라’(Dracula:The Musical)가 처음이었다.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드라큘라’를 기반으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스웨덴, 영국, 일본, 캐나나 등 여러 국가에서 공연되며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서 뮤지컬 ‘드라큘라’는 2014년에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뮤지컬이 2016년 단 2주간의 공연을 선보인데 이어 4년 만에 다시 호화로운 캐스팅과 환상적이고 입체적인 무대, 웅장하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부활했다. 넉 달간(2월11일~6월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될 이 뮤지컬은 피비린내가 진동하지 않고 정말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환상적인 ‘드라큘라’를 보여준다. 소설 속 ‘드라큘라’가 뮤지컬에서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피를 바치는 의식이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했으므로 그와 관련된 피를 빠는 귀신 이야기 역시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이브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담의 첫 번째 아내였다는 릴리트는 성에 어수룩했던 아담에게 화가 나서 남편을 떠나 악마의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린아이의 피를 빨아먹고 젊은 남자의 생식력을 빼앗으면서, 생물의 피를 마시지 못하게 한 율법을 어겼다고 한다. 헤브루인들에게 피는 생명이면서 불순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다 예수가 피를 흘림으로써 인류를 구원했다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은 피를 부활시킨다. 흡혈귀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죽은 자가 연옥에서 돌아와 이전의 육체 안에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14세기 들어 동부 프로이센, 실레지아, 보헤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흡혈귀 이야기가 퍼져나갔는데, 그것은 흑사병의 유행에 따라 생겨난 미신이었다. 이후 17세기 초 희생자의 피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 했던 바토리 여백작과 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지고, 1710년 페스트의 창궐과 함께 흡혈귀 이야기가 폭발한다. 그렇지만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고 산업혁명과 함께 이성이 승리를 거두면서 흡혈귀를 믿는 사람들은 없어지는 듯했다.

장 마리니(Jean Marigny)는 “과거의 믿음과 완전히 결별할 때에야 비로소 공상이 생생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흡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강변해도 흡혈귀에 대한 두려움까지 떨쳐버리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다.”(‘흡혈귀-잠들지 않는 전설’)라고 한다. 과학과 이성이 승리하는 근대에서도 흡혈귀는 다시 부활한다. 괴테의 ‘코린트의 신부’, 보들레르 ‘악의 꽃’이라는 시집에서 흡혈귀는 사랑에 대한 갈증을 노래하기 위한 비유와 상징으로 부활한다.

나는 섬뜩한 공포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낮의 햇빛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내 피를 그렇게 깊이 빨아들이던

인형처럼 예쁜 여인 대신

해골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흡혈귀의 변형’)중)

보들레르는 위와 같은 시를 썼는데, 책 속의 여섯 편 시는 비도덕적이며 외설적이라고 삭제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테오필 고티에의 ‘죽은 연인’(1857)과 조지프 셰리단 르파뉴의 단편 ‘카르밀라’(1964)가 창작되고, 여기에 수많은 소설과 영화, 뮤지컬에 영향을 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가 더해진다.

소설 ‘드라큘라’는 근대화에 따른 불안 의식, 그리고 기독교적 강박관념이 낳은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김종갑 번역, ‘드라큘라’의 해설 참고.) 문명화되고 산업화의 첨단을 걷게 된 19세기에 사람들은 고딕소설을 읽으며 과거의 주술적 세계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지니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 현대식 병원, 권총 등 근대적 과학기술은 작가에게 마뜩잖은 것이다. 소설 속 파커는 “먼 과거의 세상은 우리의 현대가 제거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러 화자들이 일기나 편지, 전보 등 다양한 텍스트들을 끊임없이 쓰는 행위를 행하는데, 이 또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체 검열을 행하는 근대성의 징표다. 그런 근대의 세계는 영국이라는 세계로 표상되고, 그 세계에 철저히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드라큘라는 순결과 정조, 보살핌의 의무만 있고 성적 욕망은 거세되는 세계에 침투한 존재다.

그래서 흡혈은 사랑의 행위를 뜻한다. 여주인공 ‘미나’를 탐하는 드라큘라를 어떻게든 처단하려고 하는 반 헬싱 일행의 모습은 과거의 순종적이고 욕망하지 않는 여성을 만들고 싶어 하는 근대 남성들의 숨겨진 욕망이 투사된 것이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작가는 드라큘라의 모습을 추악하게 묘사하고, 반 헬싱 일행을 천사의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기독교적 구원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느다랗게 솟은 얼굴에 매부리코, 관자놀이 주위의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 엄청 긴 양쪽 눈썹, 콧수염 아래로 뻗은 뻐드렁니, 뾰족한 귀를 가진 드라큘라는 악마다. 기독교적 윤리 의식에 따라 욕망의 흡혈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그런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완전히 버전을 달리한다. 19세기의 드라큘라는 21세기에 사랑의 열정이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것이 되면서 다시 나타난다.

‘한 여인을 사랑하기 위해 영원의 삶을 선택한 ’드라큘라’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여인 ‘미나’의 죽음을 초월한 세기의 러브스토리’라는 홍보 문구는 뮤지컬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생사를 거듭하면서 한 연인만 사랑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뮤지컬은 드라큘라를 사랑의 화신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기스러운 드라큘라는 펄럭이는 망토를 입은, 건장하고 잘생긴 배우로 변신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배려니 보호니 하는 미명 아래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던 19세기 버전이 21세기에 완전 탈바꿈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댄 내게 단 한 사람 내 허무한 삶에 유일한 빛

당신만이 나를 채워줄 나의 사랑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어.

그 이름만 속삭여도 내 세상은 떨려.

우리의 인연은 시간을 넘어 함께할 운명

이제 내게 돌아와 함께 춤춰요, 새벽을 향하여.

스토리텔링은 소설이나 뮤지컬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뮤지컬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이고 애절한 넘버(영화의 OST에 해당하는 음악)는 대표곡 ‘Loving You Keeps Me Alive’와 같은 노래를 통해 영원한 사랑의 서사를 창조해낸다. 김준수, 전동석, 조정은, 임혜영, 린지(임민지) 등이 뿜어내는 사랑의 노래는 서사를 압도한다. 거기에 19세기 유럽의 고딕풍 디자인, 성을 감싸는 푸른 안개, 4중 회전 턴테이블과 플라잉(flying) 기술이 어우러진 입체적인 연출이라는 놀라운 무대 예술에 수많은 관람객들이 감동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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