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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초점] ‘좀비’에 빠진 韓 극장가, 왜?

영화 ‘반도’ 속 좀비 한 장면. 사진제공|NEW

국내 극장가가 ‘좀비’에 파묻혔다.

코로나19 여파로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던 극장가에 ‘좀비’를 내세운 ‘#살아있다’(감독 조일형) ‘반도’(감독 연상호) 등 국내 신작들이 연이어 출격하면서 관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물론 앞서 ‘침입자’ ‘결백’ 등 현실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 휴먼물이 개봉했으나 100만 고지를 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스크 속 입가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코로나19 속 여름 극장가에 ‘좀비’가 통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살아있다’ 속 좀비떼에게 기습을 받는 유아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극장가, ‘좀비’가 깨우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반도’는 개봉 하루를 앞두고 전체예매율 80.4%, 전체예매량 13만3972장을 기록하며 올해 최고 사전예매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인 ‘남산의 부장들’ 개봉 하루 전 예매량인 10만1819명(오후 12시 50분 기준)보다 약 3만장 앞선 것이며, 사전예매율 최고 기록이었던 ‘#살아있다’(57.7%)보다도 현저히 높은 수치다. 올 최고 오프닝 스코어도 예견할 수 있는 인기다.

게다가 시국을 반영해 온라인 개최로 진행된 제7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초청작으로 선정되며 기대감을 높였고, 코로나19를 뚫고 월드와이드로 개봉하는 첫 작품이 되면서 국내외서 뜨거운 반응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반도’보다 3주 앞서 개봉한 ‘#살아있다’도 얼어붙은 극장가 속에서도 나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달 24일 개봉 이후 22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당일 20만 명이 넘는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살아있다’는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현재 누적관객수 180만을 돌파한 이 작품은 이번 주말에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반도’와 쌍끌이 흥행에 나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좀비떼 속 생존’ 무엇이 관객들을 자극했나

두 작품의 공통점은 ‘좀비’에 맞서는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뤘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아파트에 좀비떼가 출몰한 직후 각자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몇 주를 실감나게 그렸다. 유아인, 박신혜 등이 연기한 ‘준우’와 ‘유빈’의 생존 방법은 자신의 집에서 고립된 채 남은 식량으로 버티는 것 뿐. 코로나19 심각단계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이 사회와 굉장히 닮아있어 화제가 됐다. 또한 주변 이웃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자신을 위협한다는 설정은 지역 감염으로 공포에 떨었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제작진은 이런 시의성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만난 유아인도 “고립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데, 시대적으로 현실이 되어버리니까 당황스럽더라. 계획한 건 아니지만, 이런 시대를 만나서 집안에 갇힌 삶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니 독특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어떤 영화건 어떤 시기에 보여지느냐가 중요한데 이번 영화가 진짜 유독 시의성이 강한 작품이 된 것 같다”고 씁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반도’는 한단계 더 나아간다. 좀비 바이러스에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돌아온 자, 살아남은 자, 미쳐버린 자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 그리고 이를 외면하는 냉정한 국제 정세까지 담아내며 포스트 아포칼립스(멸망 이후의 세상)를 그려낸다. ‘코로나19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서글픈 예측 속에서 한번쯤 상상해봄직한 끔찍한 세계가 눈 앞에서 펼쳐진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소재나 개봉 시기를 적절하게 잡은 ‘반도’가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영화계에 변화를 가져오길 희망했다. 그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쪽에서도 ‘반도’가 극장 재개의 시작이란 느낌이 든다. 극장에 대한, 극장 산업과 밀접하고 책임감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코로나19 이전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문제가 OTT 붐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고민했다. ‘반도’는 그 고민의 결과”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우연치 않게 배턴을 이어받게 된 좀비물이 극장가를 섭렵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스포츠경향’에 “특정한 사람이 좀비가 되는 게 아니라 이웃이 좀비가 되는 구조 아닌가. 이런 시국속에서 일상적인 공포심을 느꼈던 대중들이 그런 면에서 흥미를 갖는 것 같다”며 “또한 ‘좀비’ 블록버스터가 여름철에 알맞은 장르라 그동안 작은 신작들의 개봉에도 영화관에 가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에게까지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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