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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하의 러브월드] 기억에 남는 AV 배우를 말하다① 다카스기 마리

성인용품 회사 기획자로서, 지난 수년간 많은 AV 배우를 만났다. 방구석 모니터 속에서 봤다는 거 아니다. 실제로 만난 얘기다. 물론 그저 업무적인 것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 없다. 오해하지 마라.

개인적인 철학이 이러하다.

“유명인을 만날 때,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마라.” 수습기자 생활할 때, 선배가 해줬던 얘기다. 실제로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표도르다!” 하고 소리를 질렀던 때를 빼면, 난 항상 담담히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다.

사실 AV 배우는 조금 다르긴 하지. 야한 동영상 속에서 음란한 몸짓과 외설적인 표정으로 남정네를 사로잡던 배우를 실제로 보노라면, 기분 참 오묘하다. 그래서 특정 배우와 미팅 일정이 잡히면, 나는 그 기간 동안 해당 배우 작품엔 손도 안 댄다. 나름의 노하우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는 누구였어?” 하고. 나는 AV 업계의 인간이 아니니,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배우는 없었어”하고 넘기려고 하지만, 대부분은 “정 선생, 그러지 말고 한 명만 좀 꼽아 봐” 하고 달라붙는다. 오늘 쓰는 이 원고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글이리라.

갭이 가장 컸던 배우를 말하자면, 다카스기 마리(高杉麻里·23)였다. 얼마 전에 은퇴를 선언하고 한국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AV 작품 속에서 마리의 이미지는 귀엽고 당돌한 느낌이 강했던 거 같다.

실제로 만난 느낌을 정리하자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보이시(Boyish)’한 성격이랄까. 일본 여성답지 않게 귀여운 척도 꺼려하고, 본인 스스로가 오그라드는 걸 싫어했다. 말도 직설적인 편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이게 좋다, 나는 저게 좋다 하는 등의 표현을 숨김없이 하고, 반대로 “저 사람 어떠냐고? 난 별론 거 같은데?” 하는 것도 그대로 말한다. 그러면서도 술 한잔 걸치면 묵은 앙금도 ‘쿨’하게 풀어버리는 성격이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성격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있다.

놀라운 건 그런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작품이나 커버를 촬영할 땐 귀신같이 AV 배우로 돌아간다. 평소엔 “죽어도 콧소리는 낼 수 없다!”고 말하던 애가, 카메라만 켜지면 콧소리는 물론이요, 세상 떠나갈 신음도 낸다.

내가 만난 AV 배우의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도 군데군데 특유의 색기가 있었다. 근데 마리는 전혀 아니다. 카메라가 켜지면 바뀌는 거다. ‘프로떡셔널’. 나는 마리를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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