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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상처에 진물날 땐, ‘흑백다방’으로 오세요

연극 ‘흑백다방’ 공식포스터. 사진제공|극단후암

“어떤 사람이든 한 번만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잡아낼 수 있다고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상처에 진물이 맺힌다. 찐득거리는 이물감이 느껴져도 서로 이 진물이 흘러내릴 때까지 직면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처가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인극 ‘흑백다방’(연출 차현석)을 마주한 관객들도 이야기가 흐르는 70분간 이 특별한 순간을 함께한다.

2인극 ‘흑백다방’은 1980년대 사회가 낳은 괴물 같은 가해자와 삶을 송두리째 망가져버린 피해자의 강렬한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흑백다방’을 운영하며 상담가로 이름을 알린 ‘다방주인’(홍서준·김뢰하·최원석)에게 한 손님(서진원·김늘메·박신후)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짧은 상연 시간이지만 민주화 운동 당시 암울했던 시대상이 가득 담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재능으로 경찰이 됐던 ‘다방주인’은 어린 학생들을 고문하며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냈고, 그에게 고문당해 청력을 잃은 ‘손님’은 이후 트라우마에 갇혀 포기한 생을 산다. 그 죗값으로 ‘다방주인’은 복역하며 아내까지 잃었다고 자위하지만, 망가진 삶을 억지로 이어간 ‘손님’에겐 전혀 보상이 되지 않는다. 현대사의 그늘에 매몰된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2014년 초연된 ‘흑백다방’은 그해 ‘한국 2인극 페스티벌’ 작품상 등 국내 각종 연극제서 상을 받았고, 올해까지 400회 넘게 공연된 작품이다.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 터키, 영국, 미국 등 해외무대에서도 막을 올렸다. “자신과 타인, 국가의 과거와 현재에 빚어진 상처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차현석 연출의 제작 의도처럼, 이 작품은 화해의 규모를 규정짓지 않고 열린 결말로 관객 저마다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1980년대 향수를 느끼게 하는 노고지리, 최성수 등 옛가수들의 LP판과 노래 이야기도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객석에서 웃음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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