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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피해자 코스프레?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따라가는 2020 도쿄 올림픽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오는 8일 일본에 도착해 2020 도쿄 올림픽 현장 지휘에 나서게 된다. 방역 수칙에 따라 사흘간 격리 뒤 수행할 공식행사 중에 눈에 띄는 일정은 원자폭탄 투하지인 히로시마 방문이다.

일본에서 활약한 브라질 축구스타 지코가 4일 일본 이바라기현 가시마의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달리고 있다. 가시마ㅣ 교도 연합뉴스

교도 통신은 지난 1일 바흐 위원장이 유엔이 정한 올림픽 휴전기간의 첫날인 오는 16일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먼저 입국해 있는 존 코츠 IOC 부위원장은 또다른 원폭 투하지인 나가사키를 같은 시간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으로서는 1945년 원자폭탄의 피해를 강조하고 폐허 속에서 재건과 부흥을 이룬 초강대국의 면모를 2020 도쿄 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리고 싶을 것이다.

IOC 수뇌부의 원폭 투하지 방문은 1964년 10월 10일 열린 도쿄 올림픽 개회식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당시 조직위는 성화 점화자로 와세다대 육상부원 사카이 요시노리를 내세웠다.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한 시간 반 뒤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원폭의 아이’로 불린 평범한 학생을 최종 점화자로 삼음으로써 그들이 인류역사상 초유의 핵폭탄 희생자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왜 원자폭탄을 맞게됐는지를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통했다. 1964 도쿄 올림픽은 일본이 전쟁 폐허 속에서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부흥했으며, 아시아를 넘어 서구 국가의 반열로 올라섰음을 성공적으로 홍보한 올림픽이다. 전범 히로히토 일왕이 버젓이 개회 선언을 하고, 원폭피해자가 성화를 점화하는 장면은 그들에게 점령당하고 희생당한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 국민들에겐 피가 거꾸로 솟는 울분을 안겨주었다.

한국체육대학교 허진석 교수는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발행 계간지 ‘스포츠 과학’ 최근호(5월)에 올린 기고문(도쿄 올림픽, 망령의 부활과 숭고에의 열망 사이에서)을 통해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전범국가 일본이 태평양전쟁과 아시아 주변국 침략과정에서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의 책임을 면제받고 탈아입구(脫亞入歐)로 다시 나아가기 위한 면허증을 발급했다”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또 한 번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고자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수십년간 계속된 경제침체를 모두 극복하고 일본이 건재함을 자랑하려 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치러진 뒤엔 여론을 몰아 개헌을 통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신을 노렸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으로 대회가 1년 연기된 뒤 상황은 하나도 개선된 게 없지만 그들은 이번 올림픽이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치러낸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며 개최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들의 불순한 의도는 이미 안팎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성화봉송로 지도 속에 작은 점으로 몰래 찍어넣은 독도를 훗날 자신들의 영토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는 서툰 꼼수도 들통났다.

허진석 교수는 “도쿄는 1940년 올림픽을 유치했으나 중일 전쟁 중 일본군의 만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개최권을 박탈 당했던 적이 있다”며 “전범 국가 일본의 선진국 재진입의 표상이던 1964년 올림픽의 재림은 요원해졌고, 1940년의 망령이 어른거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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