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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스포츠IN] 평범한 진리...메달 아닌 기록 중시해야 육상이 발전한다

익산시청 신유진(왼쪽)이 8일 고성에서 열린 전국실업육상대회에서 여자원반던지기 한국기록을 세운 뒤 이주형 감독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익산시청 제공

지난 9일 강원 고성에서 끝난 전국실업육상대회에서는 기록이 쏟아졌다. 대회 신기록 8개, 한국신기록 1개 나왔다. 1,2위가 모두 대회 신기록을 세운 경우도 있다. 한국 기록은 여자 원반던지기에서 19세 신유진(익산시청)이 세웠다. 대회 관계자, 심판들은 “모든 종목에서 기록이 향상됐다”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대회에 앞서 한국실업육상연맹은 기록 포상제도를 발표했다. 대회 신기록 100만원, 부문별 신기록 500만원, 한국신기록 1000만원이다. 포상제도는 고성 대회부터 적용됐고 팀 관계자, 선수도 알고 있었다. 한 번 잘 뛰면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 기회. 선수들은 열심히 달렸고 열심히 던졌다. 사비로 포상금을 지급한 김태진 실업연맹 회장은 “좋은 기록이 쏟아지니까 기분도 좋고 투자한 보람도 있다”며 웃었다.

육상은 기록과의 싸움이다. 메달, 순위에 얽매이면 기록은 기대할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해 국내 육상대회는 순위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속 지방자치단체에 보고할 때도 메달 갯수가 중요했다. 기록을 알지 못하는 다수 지자체 공무원들은 메달수로 팀을 평가했다. 그렇다 보니 메달이 수여되는 엔트리 숫자를 채우기 위해 출발선에만 섰다가 총성과 함께 빠지는 가짜 선수도 있다. 필드 종목 선수가 트랙 선수로, 트랙 선수가 필드 종목에 나서는 웃픈 현실도 있다. 메달수에 목숨이 걸린 지도자는 팀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고 선수들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영입된 선수도 생겼다. 이렇게 한국 육상은 ‘영혼’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실업육상연맹 임원진, 소속팀 지도자들이 지난 9일 강원도 고성에서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를 마친 뒤 여자 원반던지기 한국신기록을 세운 신유진(윗줄 가운데)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랫 줄 가운데가 실업연맹 김태진 회장이다.

기록 포상제도는 국내실업육상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맹 회원은 전국 80개 안팎 실업팀이다. 대부분 지자체, 공사 소속이다. 국가대표, 최정상급 선수들이 뛰는 팀이다. 이들이 기록 중심 레이스를 이어갈 경우, 기록은 향상되게 마련이다. 적당한 페이스로 메달, 순위를 나눈 구습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기록과의 싸움은 국가대표급 몇몇 선수가 아닌 모든 선수들이 해야 하는 숙명이자 임무가 될 것이다.

실업연맹 포상제도는 오는 21일 제32회 전국실업단대항대회(여수), 8월 농민사랑@2021 대전 전국실업육상 챔피언십(대전)으로 이어진다. 농민사랑 대회는 한시즌 기록을 기반으로 누적된 랭킹 포인트 상위 랭커만 나서는 명실상부한 최고 대회다. 이 대회에도 기록 포상제도가 적용된다. 거기에 한국 최고 랭커들만 나서 결선만 치르는 만큼 1~3위(400만원·200만원·100만원) 포상도 병행된다. 한국신기록 1000만원, 종목 우승 400만원, 최우수선수(MVP) 200만원이다. 한국 신기록으로 우승해 MVP까지 되면 포상금은 1600만원이다.

고성 대회에서 10초19를 뛴 남자 100m 최강 김국영(광주시청)은 김태진 회장에게 “컨디션을 잘 조절해 대전 대회에 모든 걸 쏟겠다”고 말했다. 후배 신유진이 자신이 보유한 한국기록을 깨는 것을 지켜보면서 2위에 머문 정지혜(포항시청)도 포상제도가 이어짐을 확인한 뒤 “한국 기록을 내가 다시 세우겠다”고 대회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기록을 중시하는 시스템이 한국 육상 전체에 구축될 경우, 한국 육상은 ‘앞으로’ 뛸 수 있다. 국제 대회 성적이 참담할 때마다 나오는 ‘거꾸로 뛰는 한국 육상’이라는 비아냥은 사라질 것이다. 김태진 회장은 “우리 선수들이 기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잠재력을 끄집어낼 동기가 없었다”며 “기록 포상제도는 한국 육상을 도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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