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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라이브] 시력은 0.3, 감독 퇴근도 안 시키는 독종…한국 사격의 자존심을 지켰다

김민정이 30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도쿄 | AP연합뉴스

시력 0.3. 교정시력 1.0. 사격 선수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이겨내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올라서기 위해 누구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한국 사격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김민정(24·KB국민은행)은 감독 퇴근도 방해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훈련할 정도의 ‘독종’이다.

김민정은 30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슛오프 접전 끝에 비탈리나 바차라시키나(ROC)에 39-42로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초반 메달권으로 분류되던 선수들이 줄줄이 탈락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5년만에 노메달 충격을 안을 뻔 했던 한국 사격을 구해낸 귀중한 메달이다. 김민정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역대 10번째 한국 사격 선수가 됐다.

중평중 1학년 때 사격을 시작한 김민정은 서울체고 입학 후 각종 대회를 휩쓸며 향후 한국 사격을 이끌 기대주로 꼽혔다. 그런 김민정을 유심히 지켜봤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손상원 KB국민은행 사격단 감독이다. 손 감독은 “(김)민정이는 사격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자세 등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도 “감독님이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하길래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서둘러 계약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손 감독의 눈은 옳았다. 2015년 12월 입단해 2016년 2월 졸업식을 올린 김민정은 그 해 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누르고 10m 공기권총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대형사고를 쳤다. 올림픽에서는 18위에 그쳐 쓴맛을 봤어도 소중한 경험이 됐다.

김민정은 지난 4월 창원에서 열린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당연히 딸 것으로 보였던 주종목 10m 공기권총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심적 충격을 딛고 25m 권총에 출전해 1위로 당당히 출전권을 땄다.

공기총과 화약총은 격발시 충격량이 차이가 크다. 그래서 공기총과 화약총, 두 종목을 다 뛰는 선수들은 어깨가 성할 날이 없다. 김민정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두 종목 다 훈련하려고 했는데, “(어깨에) 부담이 덜한 공기총에 집중하자”는 손 감독의 말을 듣고 25m 권총은 선발전 1주일 전에서야 훈련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당당히 1등을 하는 것을 본 ‘절친 동생’ 김보미(IBK기업은행)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천재야 천재.”

김민정은 천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격의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이 쏟아온 땀방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민정은 양쪽 시력이 0.3, 교정시력이 1.0에 불과하다. 일반인 수준으로 아주 나쁜 수준은 아니어도, 눈이 중요한 사격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조준선을 잘 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고, 더 많이 집착했다.

김민정은 권총 손잡이, 자세 등 어느 하나 미세한 부분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만족할 때까지 훈련에 매진한다. 오후 훈련이 끝나 퇴근하려는 감독을 붙잡고 성이 찰 때까지 훈련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손 감독은 “진천선수촌에 들어가서도 야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웃은 뒤 “사격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인 선수라 이것저것 민감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편하게 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면 그런 노력과 집착이 있었기에 민정이가 지금의 위치로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정은 경기가 끝난 뒤 “조금 아쉽기는 해도 난 아직 어리니까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금메달을 땄어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은 부분은 숙제로 놔두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 김민정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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