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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용찬호 in 요코하마] 숙명의 한일전, 우리가 ‘야구장의 김제덕’이 될게요

올림픽 야구 중계를 맡은 박찬호 해설위원(왼쪽)과 이광용 캐스터. 이광용 캐스터 제공

올림픽은 경기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를 즐기는 팬들과 함께 어우러졌을 때 진짜 축제의 공간이 된다. 요코하마 야구장도 텅 빈 상태로 경기가 치러진다. 환호하는 팬들, 팬들의 개성있는 의상과 응원도구 등도 올림픽의 또다른 재미인데 말이다.

박찬호 위원과는 7월초부터 중계를 준비했다. 스포츠 중계는 정보와 지식만 전달하는게 아니라 분위기에 대한 공감도 함께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캐스터와 해설위원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서로 다른 걸 느끼고 있으면 안되니까.

하루 걸러 만나고 거의 매일 통화했다. 서로 친해지고, 신뢰하고 이를 통해 공감의 영역을 늘려가는 시간이었다. 야구 중계 해설의 테크니컬한 부분은 그 다음의 문제다. 친해지는 게 우선. 단기간에 많이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중계에서 좋은 호흡이 느껴진다면 그 친해지는 과정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귀에 피 안났냐고? 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어서 피곤하지 않다. 물론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다. 도쿄에 도착해서 처음 방송센터에 왔을 때 사무실에서 후배 아나운서들과 인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1시간 반 동안 박찬호 위원의 토크가 이어졌다. 박지원, 남현종 아나운서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나는 봤다. 얘들아 괜찮다, 금세 적응된다.

KBS 이광용 캐스터(오른쪽)와 박찬호 해설위원이 지난 1일 비가 오는 가운데 도미니카 공화국전을 중계하고 있다. 이광용 캐스터 제공

첫 경기 이스라엘전은 여러모로 중요했다. 경기도 잘 풀려야 했고, 중계도 잘 이뤄져야 했다. 박찬호 위원의 토크 봇물이 갑자기 터지면 제어도 해야 한다. 경기 상황을 적절하게 시청자가 호응할 수 있는 멘트로 전달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느라 진짜 긴장했다. 머릿 속 회로 다 타버릴까봐.

그런데, 정작 박 위원의 토크가 많지 않았다. 왜그랬냐면, 원태인, 최원준, 오승환 등이 홈런을 맞을 때 ‘내가 맞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진심이 옆에서도 느껴져서 억지로 말 끌어내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더그아웃의 형처럼 다독여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차전 도미니카공화국전 때는 124승 투수의 관록이 느껴졌다. 9회초 무사 3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고 9회말 선두타자 최주환의 대타 성공 등이 나오면서 ‘이건 될 것 같다. 야구장이로서 느껴지는 기운이 있다’고 했다. 결국 극적인 역전이 나왔고, 찬호형 입도 터졌다.

이광용 캐스터(왼쪽)와 박찬호 해설위원. 이광용 캐스터 제공

이스라엘전은 다음 날 낮 경기 였다. 찬호 형은 ‘이렇게 타이트하게 경기하는게 분위기상 오히려 낫다’고 하더라. 나도 형도 거의 잠을 못잤다. 편안한 경기 상황이 되면 투 머치 토커 봉인 해제 하기로 미리 준비했고, 점수차가 벌어지자, 약속대로 봉인 해제 했다. ‘캡틴 큐’가 거기서 나왔다. 아 참, 나도 찬호 형도 원태인에게 미안하다. 투 머치 토크 하느라 원태인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기분 좋은 건, 김경문 감독님이 찬호형한테 “둘 다 목청이 하도 커서 더그아웃에 응원처럼 들린다”고 하셨다더라. 이제 한일전이 남았다. 사실 축구 중계도 이렇게 큰 한일전은 안 해봤다. 무관중이지만, 찬호 형이랑 내가 요코하마의 김제덕이다. 4일 한일전, 무조건 ‘빠이팅’이다.

*KBS 야구 캐스터 이광용 아나운서의 구술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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