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소이의 10년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초기 연출작 ‘검지 손가락’(2011)부터 ‘리바운드’(2019) ‘마이에그즈’(2020)까지 자신이 감독한 세편의 영화들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서 상영했다. 그는 커뮤니티비프 ‘데이 바이 데이 김소이 배우전-언제나 꿈을 꾸어요’라는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났다.
“10년간 찍은 세 편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봤다는 게 감격스러워요. 같이 목도해준 관객에게 감사합니다. 지난 10년간 걸어온 과정이 보이더라고요. 마치 일기장을 같이 읽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김소이는 11일 ‘스포츠경향’에 이번 특별전으로 돌아본 10년에 대한 단상과 앞으로 펼쳐질 40대를 향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검지손가락’, 그때 제겐 사랑이 전부였어요”
30대 초반에 만든 ‘검지손가락’은 처음 메가폰을 쥔 작품이기도 하다. 류덕환과 함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수놓는다.
“20대 후반의 감성이 담겼어요. 이번에 보면서 ‘내가 그땐 사랑을 맹신했고 내 인생에서 사랑이 전부였구나’란 걸 알게됐어요. 솔직히 오글거리는 느낌도 있엇고요. 하하. 하지만 그 당시 제 감성을 또 희화화하고 싶진 않은 게, 그 감성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이라 더 특별하게 와닿기도 하고요.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 같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솔직히 ‘흑화’됐죠. 10년간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고, 또 실망과 좌절이 있었으니까요. 사랑이 전부일 순 없지만, 사랑으로 이길 수 있는 게 많다는 소신은 지키려고 노력해요.”
함께 연기한 류덕환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제가 연출법을 잘 모를 때 맨땅에 헤딩하면서 찍은 거예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줬는데 특히 류덕환이 제게 날개를 달아줬어요. 그가 같이 했기에 제가 연출가로서 첫 날개짓을 할 수 있었고요.”
최근작 ‘마이에그즈’는 보다 ‘지금의 김소이’에 가까운 영화다. 나이가 들어 난자라도 얼리라는 엄마의 말에 착안해 만들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절대로 고민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 등이요. ‘검지손가락’에선 사랑이 전부라 노래했고, ‘리바운드’에선 사랑에 상처받아 발버둥쳤다면, ‘마이에그즈’는 더이상 남자를 필요로하지 않는 나를 그리고 있어요. 날 완성시키는 건 ‘누군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내 삶의 길은 내가 정한다’를 담은 영화죠.”
■“40대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과장되거나 독특하지 않고 굉장히 일상적이다.
“아마도 제 삶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런가봐요. 지질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죠. 자신을 제일 미워하기도 하고요. 그걸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만 가는 모습이 하루하루 고민하는 저와도 비슷하죠.”
이번 특별전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는 그다.
“제가 성장하고 꿈꿔온 과정, 그 꿈이 절 형성하는 과정들이 보이더라고요. 자아성찰도 했고, 한단계 더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다음 페이지에선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번 특별전을 하면서 스스로 기대하는 바가 커졌어요. 지금도 시나리오를 구상 중인데 이번엔 ‘로맨스’가 아예 없거든요. 제 관심사가 ‘사랑’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 같아요.”
늘 꿈을 꾸는 김소이다. 작은 꿈들이 모여 만든 세 편의 작품을 보면서 또 다른 꿈을 가졌느냐고 물었다. 그는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저와 같은 길을 걸어오는 후배들이 많아졌더라고요. 데뷔한지 20년이 지나서 그런가, 전 그저 발등 앞 빛만 따라서 부단히 걸어온 것뿐인데 어느새 ‘언니’가 되어있었어요. 제가 가는 길이 쉽지 않고 사회가 말하는 ‘정도’가 아닐 수 있지만 ‘이길도 길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혜수 선배가 한 것처럼 앞으론 그런 ‘언니’가 되고 싶어요. 좋은 선배가 되고 싶고요. 대단한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제 앞의 길을 쓸어준 그 선배들처럼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