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KT의 경기에서 해설을 맡은 이승엽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선발 투수 백정현을 바라보다 함께 뛰던 시절을 떠올렸다.
백정현은 대구상원고를 졸업한 뒤 2007년 삼성에 지명됐다. 1995년 입단해 2017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승엽의 12년 후배다. 2003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던 이승엽이 2012년부터 ‘친정팀’으로 돌아왔고 백정현과 한 팀에 몸 담았다. 이승엽은 “백정현 선수는 정말 조용한 선수다”라고 말했다.
선배의 말처럼 백정현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감정 표현이 잘 없기로 유명하다. 조용한 성격에 걸맞게 취미는 사진 찍기다. 지난 2019년에는 백정현이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구단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같은 성격은 투수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감정 기복이 없기에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이날도 백정현은 여느 때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피칭을 하고 있었다.
삼성에게는 중요한 경기였다. 전날 KT를 4-0으로 꺾고 1위 KT와 승차를 없앤 삼성은 1위 탈환까지 앞두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삼성이 선두 싸움을 위해 원태인-데이비드 뷰캐넌 원투 펀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두 명의 선발 투수가 출격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삼성이 택한 건 ‘정공법’이었다. 선발 로테이션대로 백정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백정현은 6.2이닝 3안타 3볼넷 3삼진 무실점으로 KT 타선을 꽁꽁 묶었고 삼성은 4-0으로 승리하며 지난 6월24일 이후 121일만에 선두 자리에 올랐다. 8521명의 관중도 함성으로 삼성의 1위 등극을 함께 기뻐했다. 이날 관중수는 코로나19 체제가 시작된 후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백정현도 시즌 14승째(4패)를 올렸다.
백정현은 경기를 마치고서야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오랜만에 팬들 응원 소리를 들으며 크게 티는 안 났겠지만 평소보다 흥나게 던진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본인과 어울리지 않았던 단어인 ‘흥’을 거론할 정도로 신나게 피칭을 한 것이다.
그는 “매 경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 경기라고 더 신경쓰거나 한 건 없지만 그래도 1위 싸움에 중요한 경기인 만큼 경기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했다”며 “(강)민호 형의 리드도 좋았고 중간중간 야수들이 공수에서 도와 준 덕분에 편하게 던졌다”고 공을 돌렸다.
이제 백정현은 드물게 보였던 ‘웃음’을 약속했다. 그는 “다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게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며 “최종전까지 더 힘내서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