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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테인먼트] ‘오징어게임’ 새벽 가고팠던, ‘마이네임’ 혜진 살고팠던 제주 “혼자옵서예”

제주 애월 올레리조트에 있는 해녀상. 해녀는 바다를 품었고, 하늘을 해녀를 그렸다.

바람이 멈춤이 없다. 구름마저 깨끗이 쓸어낸 제주 바람은 이 가을, 천상이란 말에 어울리는 하늘을 선사한다. 하늘이며 바다가 동색으로 섬을 호위하고, 바람이며 돌이 그 땅을 지켜낸 곳 제주.

마보기오름에서 본 파노라마 전경.

이제 그 많다던 비바리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를 여행객이 채워 버렸다. 제주의 가을은 뭍과는 다르다. 단풍은 호기심을 멈추지 않은 여행객의 매무새에만 울긋불긋 내렸을 뿐, 제주는 끝내 푸르거나 장중히 누렇다. 촘촘히 빗겨낸 바람결은 어미가 지 새끼에 그러하듯, 억새의 가리마에 정성을 다한다. 가지런히 머리를 다듬은 제주는 누구를 기다리며 무슨 얘기를 전하려는가? 새벽일까, 혜진일까.

■수월을 묻고 녹고는 울고…수월봉

고산리 수월봉 아래에 있는 녹고대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

그간 걸어온 길이 어쨌건 간에 제주는 웃음 꽃 만발이다. 뭍 사람들이 그들을 어찌 대했건 간에, 아무리봐도 내성적 A형인 제주는 그 속내를 참아내며 여심(旅心)을 미소로 맞는다. 천혜의 여행지는 달리 부를 말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는 눈에 비친 풍경이며 그 디딘 땅덩이의 의미까지 버릴 게 없다. 풍광의 멋스럼이야 익히 아는 터인데, 2010년엔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며 역사·교육적 가치까지 더해졌다.

고산리 수월봉 인근 화산퇴적층인 화산쇄설류(火山碎雪流) 지층. 아래 보이는 구멍은 일제 강점기 일제가 자살보트를 숨겨 놓았던 장소다.

이 중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은 일몰 명소인데다가 올레길12코스와도 연결되며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화산학 교과서라 불리는 이 곳에 켜켜이 쌓인 지질 단층이 1만8000여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니, 그 실루엣이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차귀도에서 바라본 수월봉. 사진|제주관광공사.

여행객의 눈엔 교육적 가치보다 그 민초들이 그려낸 전설에 귀가 간다. 단층 사이로 흐르는 샘물을 녹고의 눈물이라 하는데, 수월·녹고 남매가 지 어미 병구완을 마무리 하지 못한 불효에 안타까운 최후를 맞고, 그 스토리에 효심이란 칭송이 이어져 수월봉과 녹고대(정자)가 이곳에 자리했다. 두 곳에서 보는 풍경이 마음 시린 이들의 사연 만큼, 눈 시리게 가슴을 울린다.

■엄지도 까치도 떠난 자리…차귀도

차귀도의 무인등대. 사진|제주관광공사.
차귀도 억새밭. 사진|제주관광공사.

제주 가을은 단풍보다 억새다. 제주 인심처럼 급강하할 일없는 날씨 덕에 요란한 단풍은 마실을 오지 않아도, 억센 환경 탓에 억새군락은 이곳저곳에 ‘어화 둥둥 둥개둥개’다. 그중 백미는 차귀도 억새다.

차귀도는 무인도다. 아재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 촬영지이기도 하다. 세월은 인심의 간사함도 희석케 한다. 섬 가득 억새의 군무에 무인의 섬은 가고픈 여행지가 됐다.

차귀도. 사진|제주관광공사.
무인도 차귀도를 지키는 것은 새들 뿐이다.

무인등대와 폐가 만이 사람이 산 흔적을 남긴 이곳에, 바람이 정갈히 가꾼 억새가 이리 저리 춤을 추며 훼방꾼 없이 지들만의 콘서트를 펼친다. 물새들만 초대된 그 공연에 눈치 빠른 사람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요즘은 수강생보다 청강생이 더 많은 꼴이지만, 예의‘섬’절만 지킨다면야 그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오픈런’이다.

수월봉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차귀도. 사진|제주관광공사.
수월봉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차귀도행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사진|제주관광공사.

차귀도로 가는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운항된다. 섬을 돌아볼 시간은 1시간 정도다. 시간을 잊은 곳이라 탐방을 제대로 채우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고산리 해안도로 끝 선착장에서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항되나,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미리 확인(064-738-5355)이 필요하다.

■연리지의 사랑과 힐링의 소리 명상…환상숲·생각하는 정원

제주 환상숲. 사진제공|환상숲

해설사의 스토리가 숲 이야기가 됐고 가족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메아리가 됐다. 제주만의 식물 군락인 곶자왈의 환상숲은 뇌졸중을 앓은 대표가 병을 치유한 공간이고 예쁜 딸의 결혼 이야기가 출발한 곳이다. 하물며 사람 이야기도 차고 넘치는 데, 숲이야기야 두 말이 필요할까. 현무암이 터를 잡은 숲이야기는 곰보돌 대롱울 만큼 수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이 곳을 생명의 갈라파고스로 만들었다. 한반도 어디에 있는 나무라도 이 곳에 오면 그들의 식생을 버리고 이곳의 생명으로 삶을 영위한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지는 숲과 나무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주 환상숲의 연리지. 사진제공|환상숲

이 곳엔 연리지(連理枝)도 수 그루 눈에 띈다. 뿌리를 달리한 그들이 부부처럼 얽히며 하나의 나무로 자란다는 연리지. 하지만 생명을 나눈 연리지가 성성한 반면, 그 운을 다한 연리지 역시 탐방객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인생사 새옹지마가 이 숲에 온존한다.

생각하는 정원의 소리명상 체험.

인근 생각하는 정원의 네팔 핸드벨을 이용한 소리 명상은 여독을 풀기에 그만이다. 이 정원의 풍광을 눈에 담고 그 소리를 마음에 채우다보면 저절로 힐링이란 느낌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억새에 덮힌, 억새가 빠진…마보기오름·행기소

마보기오름 정상의 이정표 구멍을 통해본 억새밭.

마보기오름은 삼나무 숲을 지나 편백과 나란히 걷다보면 억새의 너른 고원을 만난다. 등산이나 트레킹 초보자에게도 그리 무리되는 산행은 아니니 큰 걱정은 접어 두어도 좋다.

마보기오름을 오르려면 삼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앞으로 삼방산, 마라도. 가파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 옆에 핀크스 골프장을 내려다 보니 인공의 코스도 볼 만은 하다. 가을 하늘은 그 바다와 억새 숱에 은빛 제 살을 탈탈 떨어 보시하고도 남았는 지, 온 세상에 은가루 뿌려 반짝임을 성성케 한다. 굳이 무릎을 굽히지 않아도 제멋대로 커버린 억새는, 시야 곳곳에 훈수라도 두는 양 빛 품은 억새를 들이미는 통에 모든 풍경이 “가을, 가을”을 외친다.

마보기오름 억새밭.

마보기오름은 서영아리오름으로 이어지며 억새 여행을 2막으로 잇는다. 이곳엔 산중 습지인 행기소가 있다. 이 습지는 큰나무군락이 위병 경계로 보호하겠다는 듯 에둘러 싸고 있어, 그 모양새에 신령스러움이 오롯하다. 서영아리의 영(靈)이 그러하니 행기소라고 다를 리 없다.

제주의 오름수는 368개다. 영겁을 버텨낸 오름 이야기는 그대로 무량수다.

서영아리오름 행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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