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장효조, 박정태, 장종훈…가을의 슬픈 전설, ‘치명적 실책’의 역사

롯데 시절 박정태 | 경향DB

가을의 실책은 슬픈 전설이 된다.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실책은 팬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

예고된 실책은 없고, 야구 실력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축구의 페널티킥 실축처럼, 가을야구의 실책은 신이 내리는 잔인한 형벌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에서도 스쳐 지나듯, 잔인한 실책 장면이 나온다. 3승3패로 맞붙은 7차전, 롯데 선발 최동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삼성 타선은 2회말 1사 만루에서 송일수의 적시타와 오대석의 홈런 등으로 4점을 뽑아 여유있는 리드를 가져갔다. 3회초 롯데 공격 때 장효조의 결정적 ‘만세 실책’이 나왔다. 4-1로 쫓긴 상황에서 한문연의 우익수 뜬공 타구를 우익수 장효조가 앞으로 달려나오다 만세를 부르며 뒤로 넘겨 3루타를 허용했다. 장효조는 이어 나온 정영기의 타구도 주저하다 앞에 떨어뜨리며 적시타를 만들었다. 경기는 롯데 유두열의 역전 스리런 홈런으로 마무리됐지만 장효조의 실책이 없었다면 역사는 바뀌었다. KBO리그 사상 최고의 타자에게 내려진 잔인한 형벌이었다.

삼성 장효조 | 경향DB

1990년대 KBO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 장종훈에게도 쓰디 쓴 가을의 실책이 있다. 1989년 빙그레와 해태의 한국시리즈 2차전, 4-2로 앞선 3회초 1사 만루에서 백인호의 유격수 앞 땅볼을 유격수 장종훈이 가랑이 사이로 빠뜨렸다. 이른바 ‘장종훈 알까기’로 불리는 실책이다. 시리즈의 흐름을 뺏긴 빙그레 이글스는 또다시 해태에 우승을 내줬고, 우승까지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장종훈은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그때 실책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롯데를 상징하는 2루수 박정태도 뼈 아픈 실책의 기억이 있다. 1995년 OB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 1-2로 뒤진 3회말 2사 2·3루에서 빗맞은 타구를 2루수 박정태가 숏바운드 처리에 실수하며 뒤로 빠뜨리는 바람에 쐐기 2득점이 더해졌다. 롯데는 3년만에 다시 한 번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아직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사실 그해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LG 3루수 송구홍의 결정적 실책 덕분이었다. 1승1패로 맞선 3차전에서 6-3으로 LG가 앞선 7회말 1사 만루 때 마해영의 3루 땅볼 타구를 송구홍이 잡았고 이를 홈에 송구하려다 3루주자 김민재를 맞히는 바람에 역전의 빌미가 됐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최형우가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에서 9회말 2사 1,3루 끝내기 안타를 치고 2루 베이스를 돌고 있다. 나바로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했던 강정호가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다. 2014.11.10 잠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14년 한국시리즈의 흐름 역시 유격수 강정호의 실책이 결정적이었다. 2승2패로 5차전을 맞았고 1-0으로 앞선 9회 1사 뒤 사달이 났다. 삼성 나바로의 타구 바운드를 제대로 맞히지 못하면서 흐름이 바뀌었고, 최형우의 끝내기 2루타로 역전패했다. 강정호의 뒤를 이은 김하성은 2019년 한국시리즈 1차전, 6-6 동점이던 9회말 박건우의 내야 높은 타구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떨어뜨렸고 박건우는 결국 끝내기 주자가 됐다. 1차전을 내준 히어로즈는 4연패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리그 최고 포수 양의지도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런다운 플레이 송구 판단 미스로 결승점을 내줬다. 두산 유격수 김재호도 그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결정적 실책을 저질렀다.

2021년 가을야구도 실책이 운명을 가른다. 잔인하지만, 그 실책이 야구의 끝은 아니다. 장효조도, 박정태도, 장종훈도 리그 최고의 선수로 남았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