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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1차원의 순수와 2차원의 작품, 3차원의 감동…가다가 가다가 ‘왕’은혜를 만나다

파주 헤이리는 천상 예술과 지상 잡술이 가을의 심연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자연의 총천연색을 닮고자 애쓴 천재들은, 예술인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그 흉내로 줄을 세워 탄복케 한다. 예술의 소도에 빗겨 있는 방방골골의 사람들은 가을 하늘만으로도 미소를 귀에 걸고 찬사로 거리를 채운다. 자연과 예술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땅에 흥을 담는다.

예술의 얕은 맛에 취한 사람들이 그들의 주머니 자랑으로 세상 눈높이를 쥐락펴락하지만 그곳엔 희망도 용기도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이가 있어 희망이고 그 길을 스스로 내어 가기에 끝내 용기다.

갤러리 더 그레이스의 왕은혜 관장은 미술계의 ‘진골’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미술계의 바람은 ‘진짜’다. 왕 관장은 헤이리의 오늘을 살며, 한국 미술의 내일을 열고자 한다.

- 갤러리 더 그레이스가 나가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국제 관계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이 잦은 편이다. 영국 소더비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당시 ‘옥션’이 미술계 화두였다.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 미술이 다가온 순간이다.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옥션·경매·아트비즈니스에 빠져들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영국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갤러리 시장에 올인했다.”

- 미술계에서 생경스런 두바이를 해외의 교두보로 생각하는 인상이다.

“교과서와 현실을 다르다. 세계 미술계가 생각하는 영국의 앞선 환경이 한국에 그대로 통하리란 것 역시 선입관이더라. 영국에서 돌아와 아트 옥션을 시도하려 했는 데, 한국 미술 시장을 뚫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어려우니 친구 생각이 났다. 영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중동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래서 국내 작품을 들고 찾은 곳이 두바이 아트 페어였다.”

- 두바이에서 희망을 봤나? 아무리 그래도 유명 아트 페어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아트 바젤이나 마이애미 아트 페어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더군다나 국내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우리나라 갤러리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시장이다. 알지 못하니 두렵기는 했지만 현지에서 한국 작가에 대한 믿음이 크더라. 그 분위기 덕에 두바이 시장을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다.”

- 왕 관장은 기성 작가보다 신진 작가를 선호하는 듯 하다.

“기성 작가의 명성에 의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완성된 기성작가를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그곳에선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한 신진 작가를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 기성과 신진 작가를 구별하는 안목 등 그림을 판단하는 실력도 남달라 보인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자료 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전문가의 견해도 빠짐없이 체크한다. 그 중에 놓치지 않는 것이 그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이다. 대중적 요소는 상업화된 미술계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더라도 관람객의 순수한 감동 마저 헐값에 넘길 수 없기에 그 부분도 빼놓지 않는다.”

- 갤러리 더 그레이스는 뭔가 다르더라. 협업도 차원이 다른 인상이다.

“하하. K팝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그곳 사람들에게 신진 작가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더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K팝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SUPER KPA’다. 여러모로 미술과 대중음악이 쌍두마차로 시너지를 내는 행사다.”

- 이번에 전시 중이 ‘후랭키’ 작가전은 미술계의 화제더라.

“이 역시 ‘SUPER KPA’를 통해서다. 공연 무대를 꾸미다보니 무대 미술이란 것이 기성 작가들에게는 힘든 부분이 많더라. 디지털 페인팅을 적용해야 하는 데, 어떤 것인가 알고 싶어 작가를 찾다가 후랭키를 만났다. 그에게서 예술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배웠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 끝이란 생각이 잘못이란 생각을 갖고 있더라. 그 그림이 유통·판매되는 전 과정이 예술 퍼포먼스라 하더라. 그러니 어느 한 부분, 소홀히 할 수 없다.”

- 요즘 예술계 화두인 NFT에 대한 생각과 갤러리 더 그레이스의 목표는 어떠한가?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후랭키의 다섯 작품을 전시 중이다. 아직 NFT의 체계는 확립되지 않은 인상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갤러리 더 그레이스만의 NFT 프로세스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갤러리는 신진 작가와의 다양한 협업을 좀 더 구체화할 생각이다. 2차원적인 작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아이템으로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을 잇고 싶다. 작가도 갤러리도 성장하는 모델을 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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