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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때리는그녀들]①우리는 야구를 한다 JDB 야구단

②여자 야구란 무엇인가, 외인구단 리부트

③경찰 야구팀, 사라졌는데 다시 있습니다

④<공 때리는 그녀들>이 꾸는 꿈

TV 화면 속 <골 때리는 그녀들>이 있다면, 화면 밖에는 <공 때리는 그녀들>이 있다. 야구는 여성에게 한 단계 더 멀리 떨어진 종목이다. 여자 축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고, 실업팀 8개가 WK리그를 치른다. 올림픽은 야구라는 종목에서 여성을 배제한다. 경기 방식이 비슷한 소프트볼이 있지만 둘은 다른 종목이다. 실업팀은 커녕, 리틀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것도 중3이면 끝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만, 너무 하고 싶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야구는 공을 때려 벽을 넘기는 종목이다. <공 때리는 그녀들>은 지금 그 벽 너머를 향한다. 두드리면 언젠가는 홈런이 나온다.

①우리도 ‘야구’를 한다, JDB 야구단

JDB 선수들이 지난 11월20일 경기에서 1회말 수비를 앞두고 마운드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화성 | 이용균 기자

지난 11월20일,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표정이 환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추켜세우며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검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JUST DO BASEBALL’이라고 적혔다. ‘야구 한 번 하자’는 뜻이 담긴 JDB 야구단의 창단 4번째 경기였다.

단장이자 주장이면서 에이스인 김라경(21)은 “오늘 팀 유니폼이 나왔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첫 경기”라고 말했다. 유니폼에 그려진 꿀벌 마스코트 이름은 통통한 벌 ‘해비’다. 김라경은 “태양과 벌을 합친 말인데,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꿀벌이다. 그런데 변함이 없는 ‘프로 유지어터’다”라고 웃었다.

JDB 야구단은 김라경이 지난 9월 전국의 ‘야구 소녀’들을 모아 만든 팀이다. 2007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15명이 울산, 하동,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야구 하고 싶어 모인다. 이 팀에 국가대표만 7명이다. 김라경은 중3부터 국가대표에 뽑힌, 국제대회 미국전에서 117㎞ 강속구를 던졌고 서울대 야구부 소속으로 대학리그에서 뛴 최초의 여자 야구 선수다.

JDB 선수들이 11월20일 화성 드림볼파크 경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JDB 제공

여느 여자 야구팀과 조금 다르다. 여자 야구팀이 아닌 남성 ‘사야팀(사회인야구팀)’과 경기를 한다. 크리에이터 ‘프로동네야구 PDB’가 전 경기를 유튜브로 중계한다. 이날 경기 역시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은 ‘사야용병팀’과 대결했다. 상대팀 3루수로 나선 최진우씨(23)는 “전날 공지를 보고 서둘러 참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야구구장 8면을 갖춘 화성 드림볼파크의 전국 유일 여자 야구장 마운드에 김라경이 올랐다. 주변 야구장에서 경기 하던 야구 동호인들이 백네트 뒤에 모였다. 힘찬 투구 속 “우와, 진짜 장난 아니다”, “우리 팀 투수 보다 훨씬 낫다”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경기는 팽팽했다. JDB 선수들은 효과적인 콘택트 스윙으로 상대팀 내야를 흔들었고, 거침없이 2루를 훔쳤다. 고교생이면서도 국가대표 내야수를 맡는 박주아(17)는 사회인 리그 수준에서 보기 힘든 안정적 수비를 선보였다. 유격수 앞 땅볼은 모조리 아웃이 됐다. JDB는 초반 대량득점을 바탕으로 점수를 지켰고, 김라경에 이어 사이드암스로 고다원(16)과 포수를 보던 박민성(18)이 이어던졌다. 코너 내야진의 실수가 나오며 추격을 허용했지만 JDB는 8-7로 이겼고, 감격적인 창단 첫 승에 성공했다. 최진우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잘해서 놀랐다. 공 끝이 살아 있더라”고 말했다.

JDB 내야수 박주아 | JDB 제공

JDB는 김라경의 말대로 “좋아하면 할 수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팀이다. 김라경은 “적어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에 사는 박주아는 ‘창원시미녀야구단’ 소속이면서, 국가대표 훈련에도 참가하고 JDB에서도 뛴다. “서울 오려면 KTX 타고도 왕복 10시간이 걸린다”면서도 “함께 모여서 하는 야구가 너무 멋있고 좋다”고 말했다. 삼성 김지찬을 닮은 2루수 최드레(14)는 친구들과 놀다가 동네 유소년 팀 감독으로부터 ‘야구 해 보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최드레는 “유니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여자가 야구해서 뭐 하냐는 질문은 여전한 ‘벽’이다. 여자 축구는 실업팀 8개가 있고, 아이스하키도 한 팀이 있지만 여자 야구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밥벌이가 되지 않는 모든 일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박주아의 어머니 김정희씨(43)는 딸의 야구를 위해 주말마다 하동에서 부산, 광주, 대전, 서울로 전국을 돈다. 김씨는 “우리 부부가 워낙 야구를 좋아한다”며 “주아도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야구 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하니까. 그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JDB 김라경이 투구하고 있다. 화성 | 이용균 기자

JDB의 존재 이유다. 첫 승리 직후 눈물을 흘린 김라경은 “야구 소녀들이 저보다 더 좋은 길을 걷고 당연하게 편안하게 야구선수라는 꿈을 꾸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편안히’가 누군가에게는 벽을 기어 올라야 주어지는 상이다.

지난 8월 일본에서는 제25회 전국 고교 여자 경식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이 고시엔 구장에서 열렸다. 25회째를 맞는 이 대회 결승이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 고시엔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승한 고료고의 주장 고바야시 메이는 “남자 선수들도 쉽게 올 수 없는 곳에서 야구를 할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며 “여자야구의 놀라움이 조금이라도 전해졌다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야구에도 우리가 잘 몰랐던, ‘놀라움’이 아직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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