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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공감’도 과하면 ‘혐오’라는 병이 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혐오범죄 같은 비극적 사건을 접할 때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하는 충격에 빠지곤 한다. 충격은 인간적 슬픔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과 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여러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넓게는 코로나 팬데믹의 위협 아래 전 세계적으로 격화되는 인종차별과 증오범죄가 그러하고, 좁게는 가정과 학교나 일터 등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 소식에도 그 흔적이 뚜렷하다. 종종 생명까지 앗아가는 잔인한 흉기가 되는 인터넷상의 독설과 악성 댓글에서도 ‘누구든 습격할 수 있는 혐오’의 위험성을 실감한다.

이렇듯 인류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혐오는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과연 언젠가 끊어낼 수는 있는 것일까?

쉽지 않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혐오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중요하지만 선뜻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 ‘혐오’의 문제에 주목한 선구자적 노력이 지난해 첫걸음을 뗐다. 공감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해 온 티앤씨재단이 주최한 아포브(APoV) 온라인 콘퍼런스 ‘Bias, by us(우리에 의한 편견)’에서 심리학·법학·미디어학·역사학·철학·인류학 등 국내 최고 학자들이 강연과 함께 토론을 펼친 것이다.

이 콘퍼런스는 우리 시대의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비롯해 십자군·마녀사냥·홀로코스트 등의 역사적 사례까지, 혐오의 씨앗에서 자라난 비극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조명했다. 이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설문과 사전신청에 기꺼이 응했고, 유튜브 업로드 후에는 사흘 만에 조회수 1만 회 돌파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최인철· 홍성수·김민정·이은주·최호근·이희수·한건수·박승찬·전진성 지음 / 마로니에북스)는 이 콘퍼런스에 참여한 강사진 9인의 강연과 토론·토크콘서트의 감동을 온전히 담아낸 결과물로, 영상을 먼저 접한 이들의 요청에 응답해 보다 넒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책은 편안하게 전달되는 해설과 생생한 대화에 담긴 토론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혐오 이슈를 고르게 진단한다.

현대의 혐오 이슈를 다룬 1부에서는 ‘공감이란 그저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해 온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을 열어 준다. 1장에서는 어느 한쪽을 향해 치우치고 과잉된 공감은 동시에 다른 한쪽을 향한 극렬한 혐오와 폭력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한다. 이어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나타나기 쉬운 경향이나 희생양을 찾아 불안을 해소하려는 본능에 대한 2장의 설명은 현재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기 쉬운 여러 위험을 일깨워준다. 인터넷이란 매체에서 더욱 극심한 혐오표현들이 넘쳐나게 되는 현상을 다양한 이론을 통해 풀어낸 3장과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이 갖는 위험과 양상을 여러 사례를 들어 진단한 4장에서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 가야 할 대항표현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인류사의 커다란 비극에서 오늘의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교훈을 되짚는다. 그중 5장에서는 홀로코스트 사례를 들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혐오를 멈추지 못했을 때 빚어지는 크나큰 비극’에 대한 경각심을 전해주며, 6장에서는 이슬람 혐오를 둘러싼 흐름을 살피면서 단편적인 인식 속에 범하기 쉬운 오해의 격차를 좁힌다.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르완다에서의 갈등 및 화해의 사례를 다룬 7장에서는 차별과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집단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추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8장에서는 십자군전쟁, 페스트, 마녀사냥 등의 역사를 통해 혐오의 속성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시대에 더 이상 혐오의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저마다의 다짐을 이끌어 낸다. 9장은 근대 식민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인종주의가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폐해를 낳게 된 역사적 경과를 다룬다. 이를 통해 잘못된 이분법을 반성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성숙을 지향케 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콘퍼런스 당시 이어졌던 토론 세션을 비롯해 시청자들이 직접 올린 질문과 강연자의 답변으로 채워진 토크콘서트 1·2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한다.

이렇듯 각 장을 거치며 혐오의 실체에 점차 다가선 독자들은 이것이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코앞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깨달음은 진정한 화해와 공존을 향한 소중한 첫걸음이 되기에 충분하다.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이 입을 모아 이 책의 의미에 힘을 싣는 이유도 다름 아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뿌리 깊은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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