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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좋은 상상] 언니들의 울음바다

아이들 넷과 센터장인 내가 쉼누리에 모였습니다. 3학년 나리(가명), 4학년 다진(가명), 5학년 보윤(가명)·라영(가명)이가 한자리에 모인 건 흔한일이 아니었습니다.

“센터장님, 어제 나리가 제 배를 발로 차서 아팠어요. 사과를 해 달랬는데 끝까지 사과를 안 하고 도망가 버렸어요. 그래서 전 너무 속상해서 울면서 집에 갔어요.”

4학년 다진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나, 무척 억울하고 속상해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3학년 동생 나리는 어제보다는 기죽은 목소리로 “나는 기억이 안 나요. 발로 안 찼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진이가 “급식 시간 줄을 서 있는데, 바로 앞에 있던 나리가 배를 발로 찼어요”라고 어제의 일에 대해 목격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리는 찬 기억이 없고, 다진이는 나리가 차서 배가 아팠다고 우깁니다. 되도록 우리 센터에서는 아이들이 싸우고 나면 당사자끼리 풀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사가 개입하기보다는 스스로 풀었을 때 성취감도 크고 문제해결 힘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겠다고 동의를 구하고 앉았습니다.

“다진이랑 나리,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쁜 마음을 갖고 하면 대체로 기억을 해요. 그렇지 않고 상대를 의도적으로 공격할 생각 없이 놀다가 부딪치거나 한 행동은 기억이 안 날 수 있어요. 나리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라고 말했더니, 나리는 누그러지는 듯했고, 다진이는 아니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다진이 언니가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 같진 않아요. 발로 찼어도 나리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사과만 해 달라고 했는데, 그걸 안 해서 속상한 것 같거든요.”

나리의 말에 다진이가 ‘알아줘서 고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거렸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가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행동을 따라서 할 때도 있어요. 요즘 나리가 전엔 안 그랬는데 가까이 노는 사람들 행동을 따라 하는 걸 보세요. 다른 사람을 손바닥으로 탁 때리거나 어깨를 툭툭 치는 행동 같은 것들요. 원래 좋은 건 따라 하고 안 좋은 건 안 따라 해야 하는데, 어리니까 그게 맘대로 조절이 잘 안 돼요. 나리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놀이로 생각했을 테니까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고요.”

그 말에 다진이도 그런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나리를 예뻐하고 주말에도 잘 놀아주는 5학년 두 언니가 다진이 말을 듣다가 갑자기 울음보를 터트렸습니다.

“나는 나리랑 태권도학원을 같이 다녀요. 거기만 가면 흑흑…, 자꾸 내 발을 걸고 건드려요. 그래서 여기 다리에 멍이 들었는데, 이게 피멍이래요. 엉엉엉. 그래도 나는 나리가 동생이니까 참았어요. 그랬더니 더 심해지고 있어요. 엉엉엉” 하고, 보윤이가 먼저 울면서 말하자 절친 라영이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하소연했습니다.

“제겐 나리가 욕도 하고 흐흑…. 이름도 막 불러서 기분이 나빴어요. 흑흑…. 그래도 제가 냅뒀는데 갈수록 더 심해져서 너무 속상해요. 흑흑흑.”

두 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다진이의 눈가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리는 세 언니들의 울음에 당황해서 “꺼억~꺽” 울기 시작했습니다. 쉼누리는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실컷 울고 이야기 하자.”

내 말에 한참동안 아이들의 울음은 계속됐습니다.

그 모습이 내겐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아이들은 먹구름 속을 지나온 해님처럼 밝은 표정이 됐습니다. 자기들끼리 풀 테니 나보고 나가 달라 했습니다. 아이들을 믿고 나왔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들이 안 나왔습니다. 다른 돌봄 선생님이 조심히 상황을 살피더니, 아이들이 잠을 잔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갈등을 푸느라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5학년 라영이가 내게 왔습니다.

“다 풀었고요. 나리가 다진이에게 베개도 갖다 줬어요. 다 같이 이불을 덮었는데 나리만 안 덮어서 다진이가 나리한테 이불 덮자고 해서 이불 덮고 같이 잤어요.”

베개와 이불로 상징되는 화해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또 네 아이의 밝은 웃음을 볼 수 있겠지?’

행복한 기대와 함께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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