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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인터뷰]좌타 거포 100억원 시대…‘좌거킬’ KT 조현우의 ‘갓성비’ 야구

KT 조현우 | 이용균 기자

KT는 한국시리즈 4경기를 치르는 동안 투수를 딱 9명 썼다. 선발 투수를 제외하고 불펜 5명이 가동됐다. 4경기에 모두 등판한 투수는 마무리 김재윤과 좌완 조현우 둘 뿐이다.

조현우(27)는 리그에서 점점 더 귀해지고 있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다. 상대 타선의 좌타 거포들을 완벽하게 잡아낸다. 우투좌타의 증가로 리그 좌타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좌타자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투수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조현우는 이번 시즌 좌타 상대 피OPS가 0.540밖에 되지 않는다. 피홈런은 1개도 없다.

이창섭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에 따르면 2021시즌 메이저리그 좌타자 90타수 이상 상대 좌투수 중 피홈런 0, 피OPS 0.540 이하 투수는 딱 3명이다. 샌프란시스코 특급 좌완 호세 알바레스와 필라델피아 좌완 레인저 수아레스, 그리고 김광현(피OPS 0.452)이 전부였다.

야구와의 인연은 특별했다. 군산중앙초 3학년 때 친구와 학교 운동장에 놀러갔다가 캐치볼을 하고 있던 부자(父子)를 만났다. 우연히 함께 캐치볼을 했고, 조현우의 공을 받아 본 아버지가 “혹시, 야구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14일 수원 KT WIZ파크에서 만난 조현우는 “그때 그 아저씨가 지금 같은 팀에 있는 배제성(25)의 아버님이다. 이후 못 뵙다가 이번 시즌 야구장에서 인사드렸다”며 웃었다.

우연한 인연은 조현우의 인생을 바꿨다. 군산상고를 졸업했고 2014년 KT에 2차 2라운드 지명됐다. KT 창단 초기 박세웅, 장성우가 포함된 대형 트레이드 때 롯데로 이적했다가 2018시즌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다시 KT로 돌아왔다.

2020시즌부터 KT의 핵심 불펜이 됐고, 이번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김재환 킬러’로 활약했다. 1차전 4-1로 앞선 8회 2사 김재환 타석 때 등판해 공 2개로 좌익수 뜬공 처리했고 2차전 6-0으로 앞선 8회 2사 2루 등판해 페르난데스에게 빗맞은 안타를 맞은 뒤 김재환을 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3차전 등판이 가장 중요했다. 1-0으로 앞선 6회 2사 1·2루에서 김재환 타석이 되자 다시 조현우가 등판했고 김재환을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도 모자란 짜릿한 삼진이었지만 조현우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뒤로 돌아 로진을 주워 들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조 로진’이다.

KT 조현우가 지난 11월17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6회 김재환을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벗어난 뒤 로진을 집어 들고 3루수 황재균을 맞이하고 있다. KT WIZ 제공

조현우는 “사실 로진 주우러 허리 굽히다가 ‘세리머니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원래 마운드에서는 심박수가 떨어지고 차분해지는 스타일이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균구속 139㎞의 속구(59.5%)와 슬라이더(40%) 투피치만으로 리그 최고 좌타 거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얼음같이 차가운 냉정함 덕분이다.

여기에 빼어난 피칭터널이 더해졌다. KT 데이터팀에 따르면 조현우의 속구와 슬라이더는 투구 궤적이 겹치는 구간이 길다. 게다가 슬라이더의 수평 무브먼트가 상당하기 때문에 타자로서는 완전히 다른 두 공에 대비해야 한다.

조현우가 올시즌 5타석 이상 상대한 타자는 김재환, 김현수, 홍창기, 나성범, 이정후, 김혜성, 구자욱, 서건창 등 8명이다. 이들 상대 피안타율은 0.146이다. 조현우는 “이정후, 홍창기 등은 진짜 좀 까다롭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 부상에서 벗어나 6홀드, 평균자책 2.61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시즌이었지만 조현우는 “마지막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가지 않은 채 시즌이 끝났다”고 아쉬워했다. 4차전 8-3으로 앞선 무사 1·2루에 등판했다. 페르난데스를 병살로 처리했는데, 김재환에게 초구 슬라이더를 맞았다. 정규시즌 1개도 맞지 않은 홈런이 시즌 맨 마지막 공에서 나왔다. 조현우는 “아직도 공이 날아가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 타구가 동기 부여가 된다. 조현우는 “보다 나은 투수가 되기 위해 우타자 상대 피칭 디자인을 연구 중”이라며 “백도어, 백풋 슬라이더를 활용하면 우타자 승부가 더 수월해지고, 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좌타 거포 FA 몸값이 100억원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그들을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좌완 투수는 ‘갓성비 투수’라 할 만하다. 조현우의 2021시즌 연봉은 750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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