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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테인먼트]별초가 걷고 철종이 놀던 강화 성곽길…분투한 이들에 대한 오마주

이렇게 역사를 꾹꾹 채운 곳이 또 있을 까. 이렇게 눈물을 꾹꾹 참아낸 곳이 또 있을 까. 항몽전쟁의 피비린내를 삼별초의 결기와 함께 여울목에 흘려 보내야 했고, ‘뜬금포’ 왕이 된 철종의 안타까움이 서린 곳, 강화다. 그곳엔 역사만 있지 않다. 오늘, 사람이 여전하고 분단도 여전하다. 우리들 중 1000년 후 그날 또다른 삼별초와 또다른 철종이 없으란 법은 없다. 이 날 걷는 이 길도 역사의 길이요 역사적 길이 될지도…. 곳곳이 복원 중인 강화나들길(고려성곽길) 15코스를 삭풍 맞으며 걷는다. 말수를 줄이고 숨소리 키우며 탄성을 예비한다.

■역사가 먼저냐, 강화가 먼저냐

강화는 선사시대의 고인돌부터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첨성단, 고구려 시대 창건됐다는 전등사, 몽골 침략 당시 누란의 위기 때 고려의 임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유적이고 보이는 것마다 역사다.

강화에 새긴 역사의 흔적은 시대가 뒤섞여 혼재된 탓에 산가지처럼 얽히고 설킨 트레킹 코스를 살피는 것으로 탐방 계획을 짜야한다. 나들길은 도심과 산성으로 이어져 드라마틱한 트레킹 코스를 만든다. 다만 이동 경로 표지판도 이를 닮아 혼란스런 탓에 갈림길에서는 눈을 부릅 뜨시길. 15코스는 고려산성을 따라 강화 남문(안파루, 晏波樓)→서문(첨화루, 瞻華樓)→북문(진송루, 鎭松樓)→동문(망한루, 望漢樓)을 돌아볼 수 있다. 거리 10.8㎞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친위군’ 삼별초를 친애하다

강화산성은 고려산성으로도 불리는 데, 1232년에 축성돼 39년간 몽골의 침략에 맞섰다. 당시엔 내성·중성·외성으로 겹겹이 쌓아 섬을 옹위했다 하나 지금 남은 것은 내성 뿐이다. 그 둘레는 약 7.1㎞.

성곽길에 들어서 산에 오르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남장대가 자리해 있다. 흔히 보는 정자와는 뭔가 다른 ‘포스’를 마주한다. 장대는 몽골 침략 당시 지휘부가 머문 곳으로, 사방에 장대가 있었다지만 남은 곳은 이 곳뿐이다.

몽골을 피해 온 곳에 삼별초도 왕을 따랐다. 이들의 결기는 패전으로 강화에 이어 전라도와 제주, 혹자는 오키나와로 도피하면서도 꺾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맹렬한 적 앞에 장대에 선 별초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의 미래를 알았을 까? 오늘 그 길을 걷는 객(客) 역시 내일이 궁금하긴 한데….

갈 길이 ‘수두룩빽빽’인 여행객에게, 장대에 섰을 800년 전 그들의 무용담이 ‘완주’의 의지라도 다지게 하니 부끄럽고도 고맙다.

■강화도령이 살던 용흥궁

강화도령이 왕이 됐다. 개천이 아니라 ‘갯벌에서 용’ 난 꼴이다. 조선 25대 임금 철종을 두고 하는 말이다. 15코스의 마지막에 위치한 용흥궁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소담한 기와집이지만 당시만해도 초가에서 살았다 하니, 그 풍경에 ‘추존’의 윤색이 보여 씁쓸하다.

어린 철종은 사약든 금부도사를 수도 없이 봐왔다. 가까운 친척들이 그 사약을 물사발 들이키듯 마셔 온 탓이다. 오죽했으면 서울 살다가 강화까지 쫓겨왔을까. 왕 서열도 낮은 그가 500명 봉영 행렬의 호위를 받으며 귀경해 왕이 됐다. ‘막장’ 세도정치의 모사로 인해 수혜를 입은 셈이다. 앞 서열은 나이가 많다 하여 또다른 이는 똑똑하다 하여 제쳐지고, 청둥 벌거숭이가 왕이 됐으니….

허수아비 세우고 권력을 참칭하려는 자는 그 시대나 이 시대나 기세가 등등하다. 제 아무리 ‘용’을 써도, 철종의 생은 끝내 암울하게 마무리 됐다. 용흥궁 밖에도 지천인 공용 화장실을 굳이 궁 안에 집채만하게 지어 놓은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우리의 예의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아차! 우리 삶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도 버틴 세상, 용흥궁서 ‘기’ 받고 우리도 버틸 밖에.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이껴~.”

■강화 바다, 역사의 격랑 속으로

성곽길은 이 곳 저 곳이 허물어졌고, 저 곳 이 곳에선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몽골에 굴복할 당시 성을 허물라 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니, 아직 남아 있는 게 용할 정도다.

이 섬은 근대사에서도 여지없이 소환된다. 수많은 외세가 거함을 몰고와 제 집드나들 듯 침탈해왔다. 일본도 미국도 프랑스도 그랬다. 갑갑하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15코스를 따라 걷다보면 가빠진 숨과 함께 산정에 이르게 된다. 확 뜨인 전망에 가슴은 뚫리는 데, 마주한 북녘 땅엔 숨이 턱 막힌다.

인근 석모도엔 황해도 해주·연백 출신의 실향민이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강화도 곳곳엔 역사가 오롯한 사찰이며, 크고 작은 교회당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서해 바다 위를 향한 돈대 마다 조국의 흥망을 목도한 화포가 이젠 한가롭다. 시간이 지났지만 바통터치한 우리의 장정들이 대북 경계로 불철주야 불을 밝히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오늘도 흐른다. 트레킹 족의 발걸음은 그렇게 이어진다. 생각이 많아지는 트레킹 코스이니, 비대면 시기에도 제격이다.

■역사책 보다 마음에 쓴 강화 이야기

강화 여행은 소소한 풍경도 느낌이 다르다. 15코스에 국화 저수지는 겨울 호수의 호젓함을 느낄 수 있다. 교문에 ‘1896년 개교’를 명시한 강화초교에 미소를 보낸다. 동문을 빠져나오다 보면 드라마 ‘전설의 마녀’ 촬영지도 만날 수 있다. 트레킹 코스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수령 600~700년 된 고목도 인상적이다. 시간이 멈춘 강화 읍내의 골목길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6화의 골목길을 옮겨 놓은 듯 하다. 길을 걷다가 지쳤다면 소박한 백반 식당을 권한다. ‘강화집’인데 6000원 짜리 백반과 닭곰탕, 인근 낚시객을 위한 도시락도 맛볼 수 있다. 딱 시골스런 상차림에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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