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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 가니 박병호 왔다…KT 박경수 “후배 아니라 친구가 온 것 같아”

박병호(오른쪽)와 박경수가 함께 LG에서 뛰던 2009년 홈런 친 뒤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수(38·KT)는 2003년 LG에서 데뷔했다. 1차지명으로 입단해 각광받는 내야 유망주였다. 2년 뒤 LG에는 후배 내야수가 들어왔다. 1차 지명으로 입단한 박병호(36·KT). 이미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 신화로 유명해진 어린 거포였다. 박경수가 3학년 때 박병호가 1학년, 둘은 성남고 2년 선·후배다.

LG에서 다시 만난 둘은 진짜 ‘절친’이었다. 잘 풀리지 않던 프로 초년 시절 서로 의지하는 동지였다. 둘 다 워낙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뒤 ‘유망주’ 꼬리표를 빨리 떼지 못하자 성화에 시달렸다. 박경수는 1군에서 뛰는 대신 많은 눈초리를 받았고 박병호는 2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2011년 7월31일, 경기가 우천취소되자 박경수는 2군에 있던 박병호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던 중 박병호에게 구단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트레이드됐다는 연락이었다. 둘이 한 팀에서 같이 한 마지막 식사가 됐다.

그날 이후 둘은 다른 길을 갔다. 박병호는 넥센의 4번 타자로 변신했다. 메이저리그에도 갔다. 박경수는 그 뒤로도 조금 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2015년 자유계약선수(FA)가 돼 KT에 입단하면서 야구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 최다 홈런을 친 2루수가 됐고 팀의 베테랑으로서 인정받았다.

박경수가 인생의 소원이던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역대 최고령 데뷔전을 치르고 우승하고 MVP까지 거머쥔 뒤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박경수가 가을야구를 기다렸던 세월만큼이나 ‘자격’을 쌓아온 박병호가 처음으로 FA가 됐다. KT 유니폼을 입었다.

박경수는 “LG에 있을 때 우리 집이 잠실에서 멀어서 일요일 2시 경기나 시범경기 때는 병호 자취 집에 가서 맨날 자고 그랬다. 병호가 오니까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나고, 입단하고 어릴 때 같이 고생했던 것도 생각난다 ”며 “지금은 이렇게 고참이 돼서 어느 정도 이뤄놓고 만나는 거라 기대도 되고 묘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창단 이후 처음으로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의 감격을 배가시킨 것은 선수단 내의 끈끈한 유대감이었다. 선배들을 잘 따르는 착한 후배들이 있고 그 위에 모범되는 두 형, 유한준과 박경수가 있었다.

사실상 KT 창단 멤버인 박경수는 1년 뒤 FA로 KT에 온 유한준과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띠동갑의 어린 선수들이 가득한 신생구단 KT에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기도 했다.

우승 뒤 유한준이 은퇴하고 박경수는 최고참이 됐다. 주장까지 다시 맡았다. 책임감은 배가 되고 쓸쓸함도 커질 것 같다 느낄 때 기적처럼 박병호가 왔다. 박병호는 ‘모범’과 ‘성실’이라면 유한준에 못지 않은 바른 선수다. 두 고참을 우승의 원동력으로 꼽으며 고마운 마음을 여러 번 드러냈던 이강철 KT 감독도 “(유)한준이가 가니 (박)병호가 왔다”며 박병호가 KT 선수들에게 또 새로운 모범의 기준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박경수는 “병호가 계약 발표된 날 밤 전화를 했다. ‘나 때문에 형까지 괜히 인터뷰 많이 하는 것 아니에요? 미안해요’라고 하기에 ‘뭐 그런 소릴 하냐’고 했다”고 전했다. 자신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것조차 민폐라고 여길 정도로 박병호는 사려깊은 후배다. 다시 든든함을 느낀다. 박경수는 “병호도 (한준이 형처럼) 후배들이 보고 배울 게 많은 선수다.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 같다”며 “후배가 아니라 친구가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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