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이후 김성근 소프트뱅크 감독 고문과 왕정치(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의 대화 한토막. 왕 회장은 “한국 타자들이 자질면에서는 일본 타자들에 비해 부족한 게 없다. 오히려 더 뛰어난 측면도 있다”는 얘기를 김 고문에게 했다. 돌려보면 한국 타자들이 자질만큼 결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과 다름 아니었다.
김성근 고문은 왕 회장과의 대화 내용과 함께 대회 기간 중 나타난 한국 타자들의 스윙 변화에 주목했다. 김 고문은 “대회 초반 한국 타자들의 스윙은 뒤가 컸다. 대회 후반부로 가면서 뒤가 작아졌다”고 기억했다.
김 고문이 ‘뒤’라고 표현한 대목은 타격 준비자세에서 이뤄지는 테이크백이다. 히팅 포인트까지 가져가기까지 과정이 길다 보니 빠른 공은 물론 예리한 변화구에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예리한 구질에 낯설기까지 한 일본이나 미국 투수들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든 건 당연했다. 대회 기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자 생물이 새 환경에 적응하듯 한국타자의 테이크백이 점차 줄어든 것이었다.
‘뒤’가 커진 것은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부터 비롯된 ‘뜬공 혁명’과도 연관돼 있다. 억지로 올려치는 각도를 만들려 하다 보면 테이크백 자세가 커질 수밖에 없다. 김 고문은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최근에는 뜬공을 치려는 경향이 강하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선호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퍼올리는 타법이 많다”면서도 “뜬공을 치려고 뒤가 커지면 안된다. 연습때는 칠 수 있어도 실전에서는 못친다. 골프도 그렇지만 앞이 커야 큰 타구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한국 타자들이 ‘뒤’가 컸던 것은 KBO리그에서는 그렇게 쳐도 성적을 냈기 때문으로 봤다. 결국은 리그의 투수 차이고 투수 문제다.
김 고문은 지난 4년간 일본에서 머물면서도 KBS를 비롯한 현지에서도 볼 수 있는 방송을 통해 한국 타자들을 관찰해왔다. 이를 배경으로 몇몇 타자들의 특징을 집어냈다.
‘뜬공 시대’에 보석 같은 타법을 갖고 있는 타자들로는 이정후(키움)과 양의지(NC) 둘을 지목했다. 두 선수는 뜬공을 만들면서도 ‘뒤’가 간결한 공통 장점이 있다.
김 고문은 이정후를 두고는 “가볍게 치는 것 같은데도 타구 스피드가 붙고 거리도 나온다. 마지막까지 헤드를 남겨두기 때문인데, 맞는 순간 ‘퉁 하면서’ 헤드 스피드로 칠줄 아는 타자”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기본적으로 ‘인 앤 아웃’ 스윙에 헤드를 끝까지 지키다보니 타이밍이 조금 빠르면 좌중간, 조금 늦으면 우중간으로 타구가 갈 확률이 많은 타자로,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뜬공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미국으로 건너가 대성공을 거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는 맞히는 데 중점을 뒀던 기존 일본타자들의 습성을 바꾼 대표적인 타자다. 스즈키 이치로와는 다른 모델로 미국에서 성공 일기를 쓰고 있다. 김 고문은 “힘에서는 아직 차이가 있지만, 이정후가 오타니와 가장 비슷한 스윙을 한다”고 분석했다.
김 고문은 양의지에 대해서는 “방망이를 쥐고 있는 톱에서 임팩트까지 시간과 거리가 가장 짧은 타자”라고 칭찬하며 “헤드를 남겨두면서도 최단 거리로 맞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가볍게 쳐도 멀리 날리는 비결”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더불어 “양의지는 뒤쪽 어깨가 처지지 않는다”며 “좋은 스윙은 허리와 어깨가 수평으로 돌아야하는데 양의지가 그렇다. 양의지는 낮은 볼을 쳐도 (우회하지 않고) 위에서 바로 나간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강백호(KT)와 구자욱(삼성)은 이미 좋은 타자지만, 더 커나갈 수 있는 재원들로 보고 있다. 김 고문은 강백호를 두고는 “아직은 갖고 있는 힘으로 친다. 헤드 스피드로 치는 법을 익히면 어마어마한 타자가 될 것”이라며 “올림픽 때 보니 나쁜 볼에 방망이를 막 내는 경향도 있던데, 쳐야하는 볼과 치지 말아아햐는 볼의 구분이 더 생기면 더 무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구자욱에 대해서는 “‘아웃 인’ 스윙을 하던 몇해 전과 달리 ‘인 앤 아웃’ 스윙을 하고 있다. 스윙이 많이 바뀌면서 헤드도 많이 남겨둬 타구 방향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