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연재소설] 세라의 티키타카(6화)

병원 내부는 오래된 외관과는 달랐다. 크림색 바닥 타일은 천장에 달린 전등이 고스란히 비출 정도로 반질거렸다. 일 층에는 커다란 고무나무 화분과 벽걸이형 어항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열대어들은 박제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세라는 혈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온 적은 있지만, 혼자 내원한 것은 처음이었다. 접수창구에 예약번호를 댔다. 간호사는 피검사와 몇 가지 문진을 마치고 내과 2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라며 오른쪽 복도 끝을 가리켰다.

진료실 앞에는 마스크를 쓴 채 연이어 기침하는 어린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뒤에 연세가 지긋한 두 노인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티브이를 봤다. 할아버지는 간간이 코까지 골며 꾸벅꾸벅 졸았다.

간호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와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졸고 있던 할아버지가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진료실로 들어갔다. 남처럼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작은 천 가방을 움켜쥐고 할아버지를 쫓아 들어갔다.

핸드폰에서 수신음이 울렸다. 김선형이 오후 회의가 한 시간 뒤로 미뤄졌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세라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간호사가 진료실에서 나올 때마다 자신을 부르지 않을까 눈을 떼지 못했다.

“유세라 님.”

간호사가 그녀를 불렀다. 세라는 이어폰을 빼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넘기며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했다. 의사 가운 오른쪽 가슴 편에 ‘정영국 박사’라고 수가 놓여 있었다. 정 박사가 코끝에 걸린 두꺼운 안경 너머로 세라를 쳐다봤다.

“음… 두통이 있고 손발이 뻐근하고….”

정 박사는 검사 결과를 유심히 살폈다.

“아, 점이 생겼다고 그랬죠?

세라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박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참 검사 기록지를 훑었다. 그가 기록지를 넘길 때 세라는 침을 삼켰다.

“대학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

“네? 무슨 병인가요?”

세라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 박사의 답변만 기다렸다.

“좀 더 명확하게 하자는 거예요.”

의사는 세라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세라는 정 박사가 몇 차례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한 말이 신경이 쓰였다. 처방전 대신 진료의뢰서와 명함 한 장을 준 것도 이상했다.

병원을 나와 근처 카페로 갔다. 세라는 가방에서 안경을 찾아 썼다. 진료의뢰서에는 영문으로 표기된 내용으로 가득했다. 질병코드난에는 14096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정 박사는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오라고 당부했다. 명함을 꺼내 자세히 살폈다. 서일대학병원의 선명한 마크 위에 작은 글씨의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희소성 전문 치료 재단 과장 오명한.

세라가 시계를 봤을 때 창밖의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책상 위에는 잡지와 화장품 샘플이 어지럽게 쌓여갔다. 병원을 다녀왔어도 손이 붓는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야근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어두운 유리창으로 일에 지친 얼굴 하나가 세라를 응시했다. 환절기마다 감기가 찾아오듯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방아쇠 수지증이 쉽게 재발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신 스트레칭하고 손가락 마디를 쥐락펴락해야 감각이 돌아왔다. 어릴 때 아버지가 읽어주던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났다.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를 밧줄로 몸을 꽁꽁 묶듯이 세라는 그들이 밤새 자신의 몸을 묶어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밧줄을 끊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세라는 진료의뢰서에 있던 질병코드를 떠올렸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인터넷 검색창에 질병코드 14096을 쳤다. 연관 검색어로 의학 논문과 전문 백과 사이트에 기재된 여러 개의 기사가 노출됐다. 그중에 맨 위에 걸려 있는 기사를 클릭했다. ‘시간의 역행’이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유전자, 세포분열, 염색체, 체내 세포 같은 의학 용어만이 지면을 가득 메웠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쉬운 용어들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심장이 콩닥거렸다. 내용이 어이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세라는 반차를 내고 아침 일찍 대학 병원에 갔다. 논문 기사가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주머니에 명함이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는 기상캐스터가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고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밖은 정말 그랬다. 하늘은 높았고 햇살이 따사로운 쾌청한 가을 날씨였다. 하지만 세라가 체감하는 날씨는 가을이 지나간 초겨울처럼 싸늘했다.

정 박사가 소개해 준 의사는 검은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두툼한 손으로 검사 기록지를 넘겼다. 의사는 묵직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세라는 긴장한 나머지 요의가 느껴졌다. 입술이 메말라 붙어버렸다.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는 말조차 떼지 못했다. 일 초가 일 분 같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침묵을 깬 건 의사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리는 포클레인 소리였다. 바깥은 펜스를 여러 군데 둘러치고 건물 확대 공사가 한창이었다.

창문으로 뾰족한 햇살이 들어와 세라의 얼굴을 뜨겁게 달궜다. 눈을 찔끔 감았다. 간호사가 세라를 한 번 쳐다보더니 블라인드를 내렸다. 의사는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의자를 돌려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 앉았다.

“설문지에 적으신 거 말고 지금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가요?”

“없는데요.”

“갈색 반점이 있다고 했지요? 그건 언제부터 생긴 거죠?

“제가 본 건 삼 개월 정도 됐어요. 그때는 동전 크기 정도였어요.”

“어디 한번 봅시다.”

세라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상의를 브래지어까지 말아 올린 다음 등 뒤가 보이게끔 돌아앉았다. 의사는 손가락으로 눌러 가며 통증이 있는지 물었다.

“아직 단단하진 않군요.”

“피부가 굳는다는 말씀인가요?”

“피부 경화증이라는 건데요. 진피 내에 아교질의 축척이 많아지면서 피부가 거칠고 두꺼워지는 것을 말해요. 피부의 한 부분만 그렇다면 국소 경화증인데, 만일 내장기관으로 퍼지는 전신 경화증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죠. 그래도 다행히 국소 경화증으로 보이네요.”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요?”

세라가 일말의 희망을 잡은 것처럼 물었다.

“손발의 경직감도 있다고 하셨지요?”

“네, 아침에 일어나면 그래요.”

“그건 혈액순환의 문제기도 하니 적당한 운동을 좀 하시고….”

세라는 미간에 힘을 주며 의사의 말에 집중했다.

의사가 자세를 고쳐 앉고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잠시 뜸을 들였다.

“혹시 조로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우리가 흔히 조로증이라고 하는 건 허치슨-길포드 증후군입니다. 주로 소아들에게 나타나죠.”

의사는 물 한잔을 들이마시며 이어갔다.

“그런데 베르너증후군이라고 성인조로증도 있어요. 백만분의 일 확률로 그 증상이 성인이 된 후 나타나는 연구 사례가 있지요. 이를테면 사춘기 때 노화가 시작되고 이삼십 대에 노화에 따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늦게 시작된 만큼 급격한 노인성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은데, 유세라 님 경우는… 베르….”

순간, 세라는 금붕어처럼 의사가 뻐금거리는 입 모양만 보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포클레인이 땅을 잔인하게 파헤치는 소리만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유세라 님, 물 좀 드릴까요?”

조금 전 아득했던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공사장의 소음조차 절망에 귀 기울이듯 갑자기 조용해졌다. 세라는 등골에 식은땀이 났다. 물 한 잔을 내미는 의사의 손을 잡고 따져 물었다.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제대로 본 거예요?”

순간 세라는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에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에린은 누구?

본명은 조선희다. 2020년 단편소설 ‘해시태그, 스타북스’를 한국문예에 발표하였으며, 2021년 ‘바오밥 나무’를 동 문예지에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소설 아카데미와 동인회 청맥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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