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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인터뷰] ‘고스트닥터’ 김범 “나의 30대 잔잔하지만 얕지 않은 호수 같기를”

tvN 드라마 ‘고스트닥터’에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고승탁 역을 연기한 배우 김범. 사진 킹콩 by 스타쉽

그가 처음 ‘하숙범’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시절 그리고 곧바로 ‘꽃보다 남자’에서 꽃보다 고운 ‘소이정’으로 누나들의 마음을 훔쳤던 그 시절, 김범은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시간은 간다. 하지만 김범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갔다. 심지어는 거꾸로 가기도 했다.

김범은 최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고스트닥터’를 통해 난생 처음 의학물에 도전했다. 응급의학과와 연결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고승탁 역이다. 흉부외과는 보통 큰 외상을 입은 응급환자와 연결된 학과로 고난도의 외과수술을 동반한다. 기본적으로 의사의 소양을 공부해야 했던 것과 별개로 사고로 ‘코마 고스트’가 된 차영민(정지훈)이 자신의 몸을 빌렸기에 평소 고승탁의 천진난만하고 능글능글한 면 뿐 아니라 빙의 후 차영민의 차갑고 분명한 성격도 함께 연기해야 했다.

“일반적인 의학물이 아니라 ‘빙의’라는 장치가 있었잖아요. 한 가지 캐릭터가 빙의 전, 중간, 후의 모습을 다 표현해야했어요. 고승탁이라는 인물의 성장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겉은 승탁의 모습이지만 제 스스로 표현한 것이 반 그리고 나머지 50은 (정)지훈이 형의 표현이었죠. 저 혼자서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둘이 만들어냈다는 과정 자체가 새롭고 재밌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병원에서 이론은 정말 빼어나지만 실전에 약했던 고승탁은 우연히 차영민이 빙의한 이후 실력이 확 달라진다. 그 이후 필요할 때마다 수술에서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 차영민의 영혼이 들어온 이후에는 차영민의 말투나 동작을 따라해야 하는데 대본에 “기다려”라고 쓰인 대사를 정지훈의 평소 버릇에 맞게 “일단 대기” “잠깐 스톱”으로 썼다. 정지훈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tvN 드라마 ‘고스트닥터’에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고승탁 역을 연기한 배우 김범. 사진 킹콩 by 스타쉽

“지훈 형과는 항상 웃으면서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애드리브를 표현할까 기대하면 그 이상의 표현을 보여주셨어요. 처음에는 영혼이 된 형을 못 알아보는 설정이었는데 앞에서 대사를 하는 모습을 무시하면서 촬영하는 일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티키타카’라고 하죠. 형이 생각을 하면 제가 따라 맞췄기 때문에 호흡이 좋았던 것 같아요.”

김범은 따지고 보면 유독 손위 남자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았다. 실질적인 데뷔작이었던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혜성은 물론 ‘꽃보다 남자’에서는 F4 이민호, 김현중, 김준 등과 얽혀나왔다. 최근에도 ‘신분을 숨겨라’의 박성웅, ‘구미호뎐’의 이동욱, ‘로스쿨’의 김명민 등 ‘브로맨스’에 특화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하우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형들이 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촬영현장에 있어서 막내로 있었던 것이 오래됐죠. 동생들이 많이 생길 나이는 됐는데 오히려 어색하더라고요. 형들에게는 편하지만 동생에게는 조심스러운 느낌? 사실 ‘고스트닥터’에서도 의사 역할했던 주요 형 배역의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았어요.”

이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 올해 34세가 된 김범에게 그 나이를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막 배우가 된 20대 초반의 싱그러움과 풋풋함이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그는 오히려 폭넓은 배우로서 성장하기에 자칫 난관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를 극복하는데 배우생활의 대부분을 썼다. 그래서 법정물, 형사물, 판타지물 등 각종 작품을 통해 그의 얼굴은 해사하게 웃는 얼굴보다는 뚫어지게 앞을 노려보는 표정이 많았다.

tvN 드라마 ‘고스트닥터’에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고승탁 역을 연기한 배우 김범. 사진 킹콩 by 스타쉽

“성숙한 이미지에 대해 신경을 쓰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이킥’이나 ‘꽃보다 남자’가 워낙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거든요. 이후 작품을 하면서 다른 모습을 선보이면 이질감을 느끼시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어요. 한때는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풋풋한 이미지라는 꼬리표가 더욱 붙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정 이미지에 대한 욕심보다는 주어지는 작품이나 캐릭터에 재미있게 다가가고 싶죠.”

‘고스트닥터’가 끝난 지금, 김범의 2022년은 진짜 시작됐다. 앞으로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 연기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전까지는 작품을 하며 이른바 ‘영혼을 갈아 넣는다’ 싶을 정도로 노력을 한다면 지금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어떻게 다른 색깔로 표현할지’를 신경 쓴다. 20대 초반이던 김범은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만 그 얼굴은 묘하게 그대로다.

“제 30대는요? 무던했으면 좋겠어요. 20대는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굉장히 불안정했고 위태로웠어요. 화려했지만 그 이후 불이 꺼진 후에는 공허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 성향도 조금씩 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욕심 같아서는 무던하고, 잔잔하지만 얕지 않고 깊은 호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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