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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피플] 선을 넘는 매력, 이정은

배우 이정은. 사진 윌엔터테인먼트

지난 9일 첫 방송된 노희경 작가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는 무려 14인의 주연배우들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총 20회에 이르는 회차도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많지만 주연배우의 수도 한국 드라마사에 일컬어질 정도로 많다. 그 면면도 쟁쟁하다. 한국 드라마의 역사를 이끌었던 김혜자와 고두심을 비롯해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한지민, 김우빈, 엄정화, 박지환, 최영준 등 중견배우들과 아역 배현성과 노윤서, 기소유까지 세대와 성별을 넘나든다.

이중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와 같은 첫 회의 중책을 바로 배우 이정은이 맡았다. 이정은과 차승원은 극중 1회 ‘한수와 은희’ 편에 등장했다. 총 세 편에 달했던 이들의 에피소드는 제주 토박이 동창으로 한 명은 육지로 나가 고달픈 기러기 아빠가 돼 돌아온 남자 그리고 제주에서 가족들 뒤치다꺼리는 다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던 여자의 이야기로 그려졌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공개되면서 단연 주목받았던 것은 최한수 역 차승원과 정은희 역 배우 이정은의 연기였다. 이들은 과거 동창이지만 은희가 한수를 좋아했던 첫사랑과 얽힌 관계다. 한수가 하나 뿐인 딸이 골프유학을 가 있는 학비를 벌기 위해 빚을 떠안는 상황에서 고심을 하다 결국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은희에게 별거를 했다고 거짓말을 해 호감을 산 후 돈을 빌리려는 계획을 한다.

tvN 주말극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정은희 역을 연기 중인 배우 이정은. 사진 tvN

결국 은희의 아직도 순수한 모습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던 한수는 한때나마 은희를 이용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에 크게 반성하고 결국 돌아왔던 고향땅 제주를 다시 떠나 가족에게 간다. 은희 역시 결국 빌려준 2억원이 다시 돌아오자 마음에서 한수를 지워내고 ‘잘가라 첫사랑’을 외친다.

멀끔한 얼굴에 큰 키와 기럭지,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을 법한 차승원의 연기는 어떤 잘생긴 배우가 오더라도 비슷하게는 펼쳐낼 수 있었을 모습이다. 하지만 이정은의 연기는 그렇지 않았다. 말괄량이었고 한수에게 반해 자신을 가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던 과거 그리고 그 사이에 세상의 풍파에 찌들어 돈만을 좇은 젊은 시절, 그 모든 걸 다 헤쳐나와 지금은 여유가 생겼지만 거꾸로 추억과 낭만이 사라진 중년의 일상은 이정은의 얼굴을 통해 모두 드러났다.

‘우리들의 블루스’ 3회에서 호텔방에서 한수의 의도를 눈치채고 서운함과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정은의 눈물연기는 드라마의 백미였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의구심을 품었을 이정은의 캐스팅은 억센 제주도 사투리로 차승원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은희의 모습에서 그 당위성이 증명되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국문광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이정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연출을 하려했지만 연기로 방향을 틀었고 수많은 무대, 카메라 공포증을 이겨내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5년 tvN ‘오 나의 귀신님’의 서빙고 보살 역으로 눈길을 모은 다음 2018년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이미지는 그때까지도 ‘필부필부(匹夫匹婦)’ 즉 평범한 여성이었다. 역할이 그랬던 것도 있지만 이정은의 작은 키와 동그란 얼굴 등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젊은 층을 열광시킬 ‘엣지’는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는 실제 나이보다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력에 있어서는 의심의 시선이 없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이전 집사 국문광 역으로 등장하면서 그의 입지는 천지개벽했다. 처음 동익(이선균)-연교(조여정) 부부의 집에서 집사를 하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에게 밀려난 후 어느 비오는 날 문광이 다시 벨을 누르며 남편 근세(박명훈)를 찾으러 온 순간, 영화의 공기는 일순간에 바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에서 나근희 판사 역을 연기했던 배우 이정은. 사진 넷플릭스

이후 이정은의 위치는 바뀌었다. OCN ‘타인은 지옥이다’ 엄복순 역으로 주연을 꿰찼고, KBS2 ‘동백꽃 필 무렵’의 조정숙 역,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강초연 역으로 기세를 이어갔다. 올해는 특히 넷플릭스의 ‘소년심판’ 나근희 판사와 ‘우리들의 블루스’ 은희 역으로 배역의 계층과 성격에 있어서도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심지어 설레는 러브라인이 생겼다.

이정은의 연기는 그가 ‘필부필부’를 연기할 때도 그렇지만 전문직의 차가움이나 억센 역할의 뜨거움을 연기할 때도 나름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는 역할을 몸에 붙이려는 그의 철저한 노력과 타고난 배우로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에 있다. 김혜수는 ‘소년심판’을 찍으면서 동갑내기 이정은에 대해 “그처럼 사랑스러운 배우는 보지 못했다”고 감탄했다.

이정은의 매력은 이처럼 선을 넘는 도전에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하는 배우로서의 열의에 더 담겨있다. 그는 디즈니플러스의 ‘사운드트랙#1’에 출연한 후 곧 나올 티빙 ‘욘더’에서는 미지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미스터리한 배역을 연기한다. 그가 넘을 또 다른 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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