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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인터뷰] 8년 만에 ‘센 언니’로 돌아온 오연수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노화영 역을 연기한 배우 오연수. 사진 베일리컴퍼니

33년차 연기자에게도 변신은 어려웠고 도전이었다. 하물며 그는 실질적으로 8년 동안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촬영 현장을 채우는 스태프와 배우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는 시스템 모두가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와 박수를 받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배우 오연수가 ‘센 언니’가 돼 돌아왔다. 1990년대 청순함의 대명사로 그를 기억했던 사람들에게는 낯선 모습일 수도 있겠다.

오연수는 최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 노화영 역으로 출연했다. 2014년 MBC ‘트라이앵글’ 이후로 햇수로는 8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다. 중간에 2017년 tvN ‘크리미널 마인드’에서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는 특별출연 형식의 잠깐 등장이었다. ‘군검사 도베르만’에서의 역할은 극중 창군 이래 최초의 여성 사단장으로 극의 모든 비리와 폐단 정점에 선 악역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드라마가 잘 돼서 기뻐요. 시작할 때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죠. 모든 게 모험이자 도전이었거든요. 역할 자체도 강하고 부담되는 장면도 많아서 ‘이걸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죠. 악역이면 이미지 망가질 것 같은 걱정도 있고, 안 해봤던 장르라 또 걱정이 됐어요. 원래 제안을 받고 고사하려고 했지만 결국 하기로 했죠.”

노화영을 한 단어로 축약하면 ‘야망’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인 군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딛고 올라가 권력의 정점에 서길 원한다. 군인 집안이었던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렇게 ‘싸이코패스’의 성격을 갖게 된 데는 정확한 서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노화영에게는 주변의 상사, 동료, 후임들이 모두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심지어 아들 노태남(김우석)마저도 자신을 위해 쓴다. 오연수는 우선 이 인물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다.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노화영 역을 맡은 배우 오연수의 연기장면. 사진 tvN

“‘왜 이 여자가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고 하느냐’ 이런 생각으로 배역을 보기 시작했어요. 방송에는 안 나오지만 아버지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던 것 같고 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사랑을 줄줄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오히려 자신을 억압했던 아버지에게 보이기 위해 높은 자리를 원하는데 과연 이 여자가 어디서 행복을 느끼고 사나 안쓰러웠던 생각이 많았어요.”

함께 연기한 다른 여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오연수도 군인으로 변하기 위한 시간을 겪었다. 우선 머리를 짧게 정리했고 촬영장에서 화장은 사치였다. 실제 여성으로 군 간부까지 올라간 이들의 사례를 다양하게 취합하면서 자세나 말투, 걸음걸이도 교정했다. 데뷔 후 가장 낮은 톤의 말투를 해야했으며 근엄한 표정을 위해 쓰지 않았던 얼굴근육도 써야 했다.

“보통 연예인이 연기를 할 때는 옷이나 헤어스타일 덕을 본다고 하잖아요. 이번 작품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역할을 한 제가 안 보였으면 좋겠더라고요. 2대8 가르마에 화장을 안 하고 큰 군복을 입고 장갑도 끼는 등 여자로서 보이는 장치는 없었어요. 모성애가 없는 모습도 저와는 달랐어요. 극 마지막에도 1년 후에도 아들을 안 만나주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사랑이 없진 않은지 아들의 편지는 읽던데요.”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부하인 원기춘(임철형)의 다리를 자르는 장면은 그의 면모가 극단적으로 보인 장면이었다. 8회의 마지막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노화영의 싸이코패스라는 설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대사만 “다리를 잘랐어?”라고 있는 장면인데 약간 웃을 때의 느낌을 넣어보자고 해서 웃는 듯한 연기로 갔더니 그 느낌이 살았다. 오연수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를 전혀 싫어하고, 연기를 해야 하니까 한 것”이라며 몸서리치고 웃었다.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노화영 역을 연기한 배우 오연수. 사진 베일리컴퍼니

1998년, 당시 청춘스타였던 손지창과 결혼해 큰 화제를 낳았던 오연수는 1999년생 장남과 2003년생 차남 두 아들을 두고 있다. 2014년 그가 미국으로 훌쩍 떠났던 이유도 연기보다는 아이들이 자신이 필요할 시기에 곁에 있어주는 게 더 좋다는 판단을 해서였다. 그렇게 경력단절이 됐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사춘기 시기를 커가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추억이 늘어 만족할 따름이다. 다시 시작한 연기도 연기를 해야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였다.

“100%로 주부로만 살다 왔어요. 한국에서는 도와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미국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해야했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들과 함께 할 것 같아요. 연기도 ‘언젠가 돌아가면 해야지’하면 막연한 생각이었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시고 시작하게 됐으니 잘해야죠.”

어느새 현장에서 그는 최고참이 됐고 ‘선생님’을 붙이며 깍듯해진 후배들이 대부분이 됐다. 그러나 바뀐 분위기, 시스템에서 그는 초보에 불과하다. 그는 신인의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절대 꼰대 같이 보이지는 않고 싶다”고 강조한 그는 앞으로도 배우가 배역 뒤에 숨는 연기를 원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분들은 저를 모르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아직도 SNS에서 ‘연기해줘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감사하죠. 다시 신인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있고 오래됐다고 해서 다 잘 하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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