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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치열했던 윌리엄스의 테니스 인생, 그래서 아름다웠던 ‘라스트 댄스’

세리나 윌리엄스가 3일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여자 단식 3회전에서 탈락한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욕 | EPA연합뉴스

여자 테니스의 위대한 전설, 세리나 윌리엄스(605위·미국)의 ‘라스트 댄스’가 장엄하게 막을 내렸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화려하고 치열했던 테니스 인생을 축약해 담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윌리엄스는 지난 3일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US오픈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아일라 톰리아노비치(46위·미국)에 1-2(5-7 7-6 1-6)로 패했다. 지난달 미국 패션 잡지 ‘보그’와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계획을 내비쳤던 윌리엄스는 경기 후 “난 호주를 좋아한다”는 농담으로 내년 호주오픈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 싶더니 “내 생애 가장 놀라운 경험과 여정이었다. 새로운 버전의 세리나, 엄마가 되기 위해 준비할 것”이라며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경기였음을 시사했다.

윌리엄스는 여자 테니스 역사에서 위대한 선수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어갈 수 있는 전설이다. 4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한 살 많은 언니 비너스와 함께 테니스를 시작한 윌리엄스는 1999년 만 17세 나이로 US오픈을 우승한 뒤 20년 넘게 세계 여자 테니스의 정점으로 군림했다. 메이저대회만 23번을 우승해 24번을 우승한 마거릿 코트(호주·은퇴)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을 갖고 있다.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로는 최고 기록이다. 남자 테니스 기록 보유자인 라파엘 나달(스페인·22회)보다도 1번이 더 많다.

3시간5분이 걸린 윌리엄스의 마지막 경기는 왜 그가 전설인지 보여주는 명승부였다. 특히 세트스코어 1-1에서 맞은 3세트에서 게임스코어 1-5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음에도 마지막 톰리아노비치의 서브 게임 때 무려 8번이나 듀스 접전을 펼치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장면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윌리엄스는 테니스 역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윌리엄스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낸 선수는 있어도, 코트 밖 영향력이 그보다 더 컸던 선수는 전무했다. 윌리엄스는 테니스계의 투사였다.

윌리엄스는 테니스를 넘어 전 사회에 흑인과 여성 인권 신장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테니스는 오랫동안 백인들의 스포츠로 불려왔다. 195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알테아 깁슨(미국)을 끝으로 오랜기간 흑인 여자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에 서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1999년 US오픈을 우승한 윌리엄스의 등장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장기간 집권한 윌리엄스를 보며 자란 흑인 여자 선수들은 그를 롤모델로 삼아 ‘나도 윌리엄스처럼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특히 윌리엄스는 2016년 ‘흑인 생명이 소중하다’는 뜻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일 때 앞장서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선수생활 내내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2001년 미국 인디언웰스에서 열린 BNP 파리바오픈 결승에서 인종차별이 섞인 야유를 듣자 14년 동안 이 대회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그는 메이저대회 남녀 동일상금과 관련된 남자 선수들의 공격에도 선봉에 서서 싸웠다. 2016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가 남녀 동일상금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자 “만약 내게 아들과 딸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 ‘너는 남자니까 더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타이거 우즈, 르브론 제임스, 미셸 오바마 같은 유명 인사들이 앞다투어 찬사를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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