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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인터뷰] 울산 신입생 3총사의 우승 결의 “가을 잔혹사? 우린 그런 거 몰라요”

울산 신입생 3총사 엄원상(왼쪽부터)과 마틴 아담, 아마노 준이 최근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추석에 우승컵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다짐하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 모두가 쉬는 그때 풍성한 가을 걷이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매년 우승 문턱에서 넘어졌던 프로축구 호랑이 군단이다.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첫 추석을 맞이한 신입생들은 우승컵 하나만 바라보며 달린다.

엄원상(23)과 아마노 준(31), 마틴 아담(28)은 최근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기자와 만나 “울산이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게 2005년이라고 들었다”며 “올해는 정상에 올라 팬들과 함께 웃고 싶다”고 말했다.

추석 소원이요? 우승이죠!

사실 축구 선수들은 명절에 쉬는 게 익숙하지 않다. 올해 K리그도 추석의 시작과 끝에 모두 경기가 잡혀있다. 헝가리에서 날아온 아담은 “어차피 헝가리도 축구 선수는 크리스마스에 경기를 뛴다”면서 “팬들 앞에서 승리를 보여줄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엄원상도 “축구를 하면서 추석이 아니라 명절에 쉰 기억이 원래 없다. 오히려 명절에 관중이 늘어난다면 경기를 뛰는 맛이 난다”고 신바람을 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가위 보름달에 소원은 빈다. 아마노는 “일본도 추석을 지낸다”며 “추석에 소원을 비는 문화는 나도 처음이다. 그래서 신기하고 단박에 우승이 소원이 됐다”고 말했다.

아마노가 먼저 추석 소원으로 우승을 꺼내며 분위기를 띄운 것은 울산의 지독한 준우승 역사를 잘 알고 있어서다.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단 2번(1996년·2005년)인데 준우승은 무려 10번에 달한다. 역대 K리그에서 울산 다음으로 준우승을 많이 한 팀은 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인데 각각 5회씩이니 합쳐야 울산과 같다.

일본 J리그 요코하마FC에서 오랜기간 활약한 아마노는 “사실 나도 일본에서 준우승만 여러 번이라 우승을 해보는 게 꿈”이라며 “내가 일본에서 겪은 아픔, 울산이 겪은 악몽을 올해는 털어냈으면 하는 게 추석 소원”이라고 말했다. 아담은 “울산에 입단하니 다들 간절하게 우승을 말하더라. 나도 올해가 우승할 적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엄원상도 준우승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3년 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사상 첫 결승에 오르고도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당시를 떠올린 엄원상은 “우승과 가장 가까운 자리, 그 곳까지 갔는데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허탈한 심정은 경험한 사람만 안다”면서 “올해 울산에선 달라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아마노도 “준우승의 분하고 아쉬운 마음을 또 겪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팬들 사이에선 그가 누차 강조하는 우승 의지를 그의 이름에 빗대 ‘아마 No 준우승’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 울산은 신입생 3총사들의 매서운 활약에 힘입어 어느 때보다 우승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규리그 38경기 중 29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승점 8점차로 앞선 선두다.

울산의 가을 잔혹사? “우리는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은 아직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찬바람이 불면 성적이 추락하는 가을 잔혹사를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최근 꼴찌인 성남FC에 발목을 잡히면서 10경기 만에 패배를 당했다. 지난해 이맘 때 역시 꼴찌였던 성남전 패배를 시작으로 라이벌인 전북 현대에 우승컵을 빼앗긴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올해 울산 유니폼을 입은 3총사들은 가을 잔혹사는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우승에 대한 간절함을 공감할 뿐 자신들이 겪지 않은 트라우마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담은 “경험하지 않은, 그리고 경험하지 않을 준우승 트라우마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팬들도 걱정하지말라. 우리는 과거의 실패가 아니라 앞으로의 승리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울산 마틴 아담이 지난 7월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에서 입단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울산이 가을 잔혹사를 풀어내려면 추석에 웃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울산은 추석 연휴인 11일 홈에서 최대 라이벌전인 포항 스틸러스와 맞붙는다. 올해 양 팀의 전적은 1승1패. 울산이 포항을 꺾는다면 우승 레이스의 8부 능선을 넘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을 잔혹사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일정이다. 엄원상은 “일정이 참 묘하다”면서 “포항과 맞대결은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때 만났다. 이번엔 팬들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 선수가 보여주는 활약상을 살펴보면 믿음이 간다. 먼저 울산 유니폼을 입은 엄원상과 아마노가 각각 11골·5도움, 8골·1도움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고, 헝가리 득점왕 출신의 아담도 짧은 시간에 3골·2도움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아담은 자신이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K리그에서 가장 무거운 거구(190㎝·95㎏) 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울산은 아담이 합류한 뒤 패싱 게임 위주에서 간결하면서 굵은 축구까지 구사할 정도로 공격에 다채로움이 생겼다. 더 이상 밀집수비로 버틸 수 있는 팀이 아니다. 아마노는 “아담이 오면서 우리는 더욱 강한 팀이 됐다”고 말했고, 엄원상은 “마지막까지 순위표 가장 윗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담은 “울산에선 찬바람이 불면 힘들다지만, 난 추운 날씨에 더 힘이 난다”며 “사실 난 말이 많은 걸 싫어한다. 그라운드에서 골로 우승으로 보여주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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