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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③]애쉬그레이 노민혁 “클릭비 후 힘들었지만···”

애쉬그레이 노민혁 사진 제공 원더월

프로듀싱 밴드 애쉬그레이의 노민혁이 클릭비 활동 이후 힘들었던 시간을 고백했다.

노민혁은 지난 1999년 1세대 아이돌 밴드 클릭비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해 3년여의 왕성한 활동 후 2002년 당시 소속사와의 계약만료로 클릭비를 떠났다. 이후 2008년부터는 피아니스트 심태현과 애쉬그레이로 프로듀싱 밴드를 꾸려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애쉬그레이로 다시금 음악을 시작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노민혁은 “메이저 소속사에서는 지나간 아이돌이라고 안 받아줬고, 인디신에서는 유명세가 있다 보니 받아주지 않아서 무대가 없었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고백했다.

“클릭비를 하면서 1부터 10까지 만들어주는 회사에 있다가 그냥 절음 배짱으로, 오기로만 내 음악을 하겠다고 회사를 나오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클릭비 때도 곡을 쓰긴 했지만 회사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다 보니 적극적으로 곡 작업에 참여하진 못했거든요. 그래서 5~6년, 긴 시간을 방황만 했죠. 그러다가 2007년부터 마음을 잡고 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일년간 10곡 정도를 만들어 놓고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죠. 그때 심태현도 만났고, 재야의 고수였던 마현권이라는 보컬도 합류해 초창기 활동을 함께 했어요.”

애쉬그레이로 새롭게 시작한 생활도 녹록치 만은 않았다. 애쉬그레이를 ‘버스킹 1세대’라고 소개하며 당시 쏟아부었던 노력과 열정을 회상했다.

“2008년 처음 애쉬그레이를 시작하면서, 당시 ‘버스킹’이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시절에 인사동에서 2년간 버스킹을 했어요. 요즈 버스킹 하는 걸 보면 마이크에 엠프에 다 갖추고 하지만, 그때만해도 그렇게 전기를 끌어다 쓰고 그럴 정도의 여건이 되지 않아서 정말 생목으로 노래하고 공연했어요.(웃음)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라 사람들의 시선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죠. 그런데 당시 유행했던 UCC 공모전에도 도전한 게 높은 조회수가 나오면서, 문화교양 프로그램 섭외도 들어오고 뉴스에도 나오기도 했어요. 유튜브 초창기 유튜브 채널도 만들고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했었죠.”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도리어 걸림돌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유명세. 혹시 클릭비로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어땠겠냐는 우문에 노민혁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지만, 클릭비로 인해 많은 경험과 팬이라는 자산이 남았다”는 현답을 전했다.

“클릭비로서 활동했던 장점은 분명해요. 활동 속에서 많은 경험했고, 또 팬들 만났죠. 가족 외에 막연한 응원과 이유 없는 성원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팬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때는 가족보다 더 위로가 되기도 해요. 아직도 가끔은 팬들을 위해 작은 자리라도 만들려고 해요. 팬들과 만나면 ‘3년 밖에 활동을 안했는데 어떻게 20년이 넘게 간직하고 버텼냐’고 말하곤 하죠. 그럼 팬들은 ‘그 3년이 큰 부분이었다’고 얘기해주는데 그게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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