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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의 인앤아웃 In AO] 세계 8위 격침한 122위 카주, 호주오픈의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을까?

테니스TV SNS에 올라온 루네와 카주의 주니어 시절 사진. 테니스TV 캡처

시즌 첫 그랜드슬램 호주오픈 5일째인 18일에 대이변이 일어났다. 프랑스 신예 세계 122위 아르튀르 카주(프랑스)가 8번시드 홀게르 루네(덴마크·8위)를 3시간22분 만에 3-1(7-6(4) 6-4 4-6 6-3)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대회에 와일드카드를 받고 출전한 카주는 1회전에서 베테랑 라슬로 제레(세르비아·33위)를 풀세트 접전 끝에 물리치더니 2회전에서 루네마저 제압,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톱10을 꺾는 것과 동시에 생애 첫 그랜드슬램 32강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두 선수는 주니어 때 통산 세 차례 대결해 2승1패로 한 살 많은 카주가 우위를 차지했지만 프로에서는 두 선수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프로무대에서 루네는 승승장구하며 개인 최고 세계랭킹 4위를 기록했고 네 차례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오픈(22, 23년)과 윔블던(23년)에서도 8강에 오르는 등 스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카주는 이번 대회 전까지 투어대회보다 한 단계 낮은 챌린저에 주로 출전하며 세 차례 우승했을 뿐 프로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주니어 때인 2020년 호주오픈 주니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주니어 4위에 올랐지만 어느새 톱10으로 성장한 루네를 넘기에는 객관적인 전력상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에 카주의 그랜드슬램 경험은 고작 프랑스오픈 1회전(21, 23년), 윔블던 예선 1회전、US오픈 1회전(23년)이 전부였고 프로 데뷔 후 호주오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홀게르 루네를 상대한 아르튀르 카주의 플레이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렇듯 이날 경기는 세계랭킹으로나 기량 차이를 봤을 때 루네의 승리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다르게 경기가 흘러갔다. 카주는 라파엘 나달과 카를로스 알카라스(이상 스페인)를 연상시키는 빠른 발을 이용한 코트 커버력으로 루네의 공격을 봉쇄하였다. 특히, 루네의 절묘한 드롭샷을 베이스라인 2~3m 뒤에서 달려와 공이 투바운드 되기 직전 패싱샷으로 득점한 장면과 사이드라인과 베이스라인 위에 떨어지는 정확한 스트로크 그리고 매치포인트에서 루네의 드라이브 발리를 환상적인 백핸드 앵글샷 위너로 작렬시키며 승리를 확정 지은 것이 압권이었다.

카주의 키는 테니스 선수로서 비교적 작은 183cm이지만 최고 서브 속도 시속 219km, 첫 서브 평균 속도 시속 206km의 대포알 서브로 루네를 괴롭혔다. 이날 경기에서 카주는 루네보다 무려 12개 많은 18개의 서브 에이스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지칠 줄 모르는 강철 체력, 포인트를 얻거나 잃을 때 표정의 변화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냉철함 그리고 그랜드슬램이라는 큰 무대에서 톱랭커를 상대로 전혀 긴장하지 않는 침착함이 돋보였다.

아르튀르 카주(오른쪽)가 2024 호주오픈 남자 단식에서 홀게르 루네를 꺾은 뒤 인사하며 위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와는 반대로 루네는 카주의 폭넓은 코트 커버력을 의식한 탓인지 공을 깊숙이 보내려다 잦은 실수가 나왔고 카주를 압박하기 위해 네트 플레이도 적극적으로 펼쳤지만 이마저도 카주의 패싱샷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루네는 프랑스오픈 관중과 신경전을 벌이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관중석 한쪽에 자리 잡은 20여 명의 프랑스 관중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카주를 향한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코트만 하드코트였을 뿐 경기가 열린 마가렛 코트 아레나는 마치 롤랑가로스 분위기였다. 루네는 프랑스 관중들의 이러한 응원이 신경에 거슬리는 듯 득점할 때 종종 프랑스 관중들을 향해 주먹 세리머니를 펼치며 프랑스 관중들을 자극했고 이에 흥분한 일부 프랑스 관중들은 루네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기도 했다.

루네는 지난해 10월 스타 플레이어 출신 보리스 베커(독일)에 이어 지난달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세버린 루시(스위스)까지 영입하는 등 막강한 팀을 꾸리며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카주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또한, 투어 개인통산 100승 달성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루네를 꺾고 자신의 테니스 커리어에 최고의 이정표를 세운 올해 21살 카주는 아서 피스(34위, 19세), 루카 반 아쉐(79위, 19세) 등과 함께 프랑스 남자 테니스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호주오픈을 앞두고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가 선정한 ‘멜버른에서 주목해야 할 5명의 챌린저 선수’에서는 가장 먼저 언급될 정도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체력, 민첩성,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 스트로크의 안정성과 수비 능력, 일관성 등 테니스 필수요소를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카주는 어렸을 때 프랑스 유명 핸드볼팀에서 활약한 핸드볼 유망주였다. 하지만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의 경기를 본 후 테니스의 매력에 푹 빠져 11살 때 테니스로 전향했다. 2020년 호주오픈 주니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핸드볼 유망주에서 테니스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그는 이제 세계 테니스로부터 관삼을 받는 선수가 됐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홀게르 루네. 게티이미지코리아

경기가 끝난 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먼저 덴마크 테니스 팬들에게 사과한다. 나는 덴마크를 정말 사랑한다. (루네를 이긴)내가 잘못했다”라며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카주는 “프리시즌 동안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와 앤디 머레이(영국)와도 함께 훈련했다. 이 선수들과 친해졌지만 나의 경기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루네를 꺾으며 모든 사람에게 나를 증명했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카주는 자신의 절친 아서 피스(프랑스)를 꺾은 탈론 그리에크스푸르(네덜란드, 31위)와 32강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깜짝 8강에 오르며 스타덤에 오른 벤 쉘튼(미국)처럼 카주 역시 이번 대회를 발판삼아 신데렐라맨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호주|박준용 아레테컴퍼니 대표,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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