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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에서 우승 세터로’ 노재욱의 인생역전
기사입력 2017.04.17 16:20
최종수정 2017.04.17 16:24
노재욱(25·현대캐피탈)의 이력은 화려하지 않았다. 성균관대 재학시절에는 형들에게 밀려 4학년이 되기 전까지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2014년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의 전신)에 입단한 후에도 선배들에게 치여 백업 선수로 근근이 출전했고, 데뷔 시즌을 마치자마자 현대캐피탈로 트레이드됐다.

그랬던 그가 팀의 주전 세터로 올라서고 이적 후 두 시즌만에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우승 후 약 열흘이 흐른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현대캐피탈 본사에서 만난 노재욱은 “제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우승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2위 현대캐피탈은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전력을 꺾고 챔프전에 진출해 대한항공과 우승을 두고 겨뤘다. 노재욱은 “체력적 부담은 크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며 “경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도 긴장이 되고 생각이 많아져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이 불안의 근원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현대캐피탈은 2015년 4월 베테랑 세터 권영민을 LIG에 내주고 노재욱과 정영호를 받았다. 당시 신인 노재욱은 이 트레이드를 ‘선수 생활 그만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현대캐피탈 노재욱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현대캐피탈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현대캐피탈 노재욱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현대캐피탈 본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그는 곧 ‘버림 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고, 새 팀에서 세터 출신의 최태웅 감독을 사사할 수 있다는 데서 기회와 희망을 보기도 했지만, 권영민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거웠다. 노재욱은 “이 팀에 처음 왔을 때는 경기를 뛸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몰랐다”며 “‘트레이드돼서 온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했다.

노재욱은 노력과 투지로 불안과 걱정을 지워나갔다. 5차전까지 이어진 이번 챔프전 도중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고통을 참고 경기에 나섰다. 발목을 다친 외국인 선수 대니 갈리치가 코트를 떠나지 않았던 것도 자극이 됐다. 노재욱은 “대니가 발목이 두 번 돌아갔는데도 뛰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경기 도중에 울 뻔했다”며 “‘외국인 선수도 이렇게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큰 경기 경험이 쌓여가면서 마음을 비우는 법도 터득했다. 그는 “‘나는 원래 못하는 선수’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편안했다”며 “감독님도 어느 인터뷰에서 ‘네가 감독 해봐라, 재욱이 토스 보면 안 답답할 것 같냐’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그의 노력은 팀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주장 문성민은 챔프전이 끝난 후 “나의 MVP는 노재욱”이라고 말했다. 노재욱은 “내가 공을 올려주면서도 ‘성민이 형이 이 공을 어떻게 때리나’ 항상 미안하다”며 “성민이 형에게 정말 고맙다. 토스가 좋지 않아도 다 때려주고, ‘대충 올려주면 형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해 세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했다.

노재욱은 다음달 초까지 휴가를 보낸 뒤 다음 시즌 우승을 향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일 계획이다. 그는 “우승팀으로 코트에 섰을 때 그 희열이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며 “비시즌 동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이 어려운 것(우승)을 또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