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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의 왼손잡이 세상]천재감독 ‘사라 폴리’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아닐까? 오는 27일 개봉하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는 치매로 고통받는 노부부의 생활을 통해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 역을 연기한 줄리 크리스티의 고결한 모습에 넋을 잃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끝난 후 감독이 누구인지를 알게 됐을 때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인생의 황혼을 이처럼 감동적으로 연출한 감독이 아직 만 서른도 안 된 예쁘장한 여배우라니 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 사라 폴리(Sarah Polley)는 겨우 만 스물여섯 살이었다.

사라 폴리는 자신이 양어머니라 일컫는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반항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아역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지난 2000년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이 예약된 6000만 달러짜리 영화 ‘Almost Famous’를 거절하고, 제작비가 겨우 150만달러인 캐나다 영화 ‘The Law of Enclosures’에 출연했다. 또한 극렬 좌파인 그녀는 보수적인 온타리오 주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다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치아가 부러지기도 했다.

부모가 다 배우인 폴리는 어린 시절부터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로 평가받았다. 함께 작업한 감독들은 그녀의 표정이 워낙 풍부한 감성을 발산하기 때문에 많은 대사가 필요치 않다고 칭찬했다. 그녀는 항상 상처입고 뒤틀린 영혼들을 연기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즐겼다.

캐나다 내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스타덤을 굳힌 그녀는 99년 영화 ‘Go’로 할리우드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이때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더욱 더 주류 영화계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할리우드보다는 저예산의 모험적인 작품에서 활약하는 것이 그녀의 적성에 더 맞았다. 그녀에게 영화는 예술을 깨달아가는 작업이었지, 스타덤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는 아니었다.

연기자로서 폴리는 항상 진지하게 캐릭터에 몰두했지만, 배우이기에 영화 전체를 장악할 수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 영화 전체를 구상하고 완성하는 위치에 놓이기 위해 결국 그녀는 작가로서, 또 감독으로서의 수업을 쌓았다.

두 편의 단편영화로 자신감을 얻은 폴리는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읽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을 각색하기로 결심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여주인공 역할은 당연히 폴리의 영웅으로 2001년 할 하틀리 감독의 영화 ‘No Such Thing’에도 함께 출연했던 크리스티였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시나리오를 든 채 크리스티를 찾아간 홀리는 단박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아마도 너무 어린 사람이 치매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니 비웃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때부터 폴리의 삼고초려는 시작됐고, 결국 그녀의 데뷔작인 ‘어웨이 프롬 허’에서 크리스티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기를 선보였다. 두 사람은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지난 80회 아카데미에 각각 여우주연상과 각색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지난 60년대 히피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알 파치노가 ‘가장 시적인 여배우’라 칭송한 크리스티와 할리우드에서 대성할 모든 재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미련할 정도로 독립적인 작업을 고집하는 폴리의 합작품인 ‘어웨이 프롬 허’. 키가 155㎝가 조금 넘는 이 작은 거인들의 연기와 연출을 감상하며, 노년의 삶을 한번 예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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