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영화 ‘크로싱’ 실화 무단도용…실존인물 “말 한마디 없어”

김태균감독 “극비촬영 동의 못구해”

주말개봉 ‘호재냐 악재냐’ 관심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크로싱’(감독 김태균, 제작 캠프B)이 영화의 주요 모티프가 된 실제 탈북자로부터 사전 허락을 구하지 않고 스토리를 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인터넷 각종 게시판에서 ‘크로싱’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탈북자 유상준씨(46)는 23일 영화 제작진으로부터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스포츠칸과 만난 유씨는 “지난 5월까지 내 이야기가 영화화되는지 전혀 몰랐다”며 “주위 탈북자들로부터 내 이야기가 영화화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내 이야기를 영화화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주먹 한방을 제대로 맞은 느낌”이라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오는 26일 개봉되는 ‘크로싱’은 북한의 물자난 때문에 탈북한 아버지 용수(차인표)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 준(11세·신명철)의 눈물어린 가족애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여러 탈북자들의 눈물어린 사연들을 재구성해 만들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부자지간인 것과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유상준씨 사례와 닮았다.

유상준씨는 1998년 큰아들 철민군(당시 12살)과 함께 탈북했다. 그러나 유씨는 중국 공안의 삼엄한 단속에 1999년 5월 조선족 가족에게 아들을 맡기고 유랑하다가 2000년 말 혼자 한국에 입국했다. 유씨는 한국에 정착한 후 곧장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시도하지만 몽골 국경에서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유씨는 아들 사망 후 탈북 아동을 돕다가 지난해 중국 공안에 잡혀 감옥에 갇혔다가 추방되기도 했다. 현재 탈북자 사회에서는 ‘크로싱’은 당연히 유상준씨 실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로싱’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미 유씨의 사연을 영화화한 작품이 이미 충무로의 중견 감독 이광훈 감독에 오래전에 기획돼 정상적인 절차로 시나리오 작업까지 마쳤다는 점이다. 이 시나리오는 유씨에게 정식적으로 영화화 동의를 구한 후 후원금을 지급하고 그의 증언을 꼼꼼히 체크해 쓰여졌다. 유씨는 “내가 이쪽이랑 일하면서 저쪽에 가서 양다리를 걸친 것으로 보여질까봐 걱정된다”며 “‘크로싱’으로 인해 내 사연을 온전히 담은 영화 제작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유씨는 법률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탈북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실제 탈북자를 배려하지 않아 속상할 뿐”이라며 “현재 바람은 그냥 일반인들이 ‘크로싱’을 보고 탈북자의 현실에 관심을 좀더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균 감독은 23일 스포츠칸과의 전화통화에서 “유씨의 사연에서 영화의 결말부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유씨의 실화를 영화에 사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사연을 많이 담으려 했다”며 “비밀리에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제작 과정 때문에 일일이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감독은 ‘워싱턴 타임즈지’ 등 외지에서 ‘크로싱’이 유씨의 소재를 영화화한 것으로 소개된 기사에 대해서는 “나나 제작사에서 나서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유씨의 탈북사연과 중국에서 탈북 아동을 도왔던 일들이 미국 언론에 많이 알려져 기사가 그렇게 나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감독은 실존 인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을 사과했다. 그는 “내일이라도 당장 유상준씨를 만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겠다”며 “고의가 없었음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글 | 최재욱기자·사진 | 이석우기자>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