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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시완 “난 여전히 미생, 현실의 많은 ‘장그래’들에 미안하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이 주는 감정의 처음과 끝은 오로지 주인공 장그래에게서 비롯됐다. 드라마 초반 보이는 그의 움츠러든 어깨에서 사람들은 20대 청춘의 고단함과 막막한 미래를 봤다. 그리고 막바지 요르단의 사막을 힘차게 질주하는 차 안 그의 미소에서 사람들은 ‘그래도 버텨야겠다’는 위안을 얻었다. 5개월을 넘게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26)은 <미생>을 통해서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많은 작품 속에서 그는 부잣집 아들도 아니며, 빼어난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각 시대의 20대들이 헤치는 고난한 감정의 파고와 현실의 벽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미생>을 끝낸 그는 제작발표회 때보다 더욱 늘어난 취재진 앞에서 침착하게 장그래로 살아온 5개월을 들려줬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의 연기 장면. 사진 tvN

그는 “세부에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았네요”라면서 웃으며 말을 뗐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미생> 종방에 맞춰 필리핀 세부로 4박5일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임시완의 말로는 취하고 취해서 또 취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는 <미생>을 하면서 마음속에 일렁였던 많은 감정의 파고를 세부의 석양 사이로 밀어두고 돌아왔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스타제국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자나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적어도 현장에서는 ‘연기에 미쳐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해줬어요. 처음에는 내가 장그래를 표현하고 그 캐릭터로 사는 부분을 즐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잘 해야겠다’ ‘책임지고 해야겠다’는 부담감으로 버티는 촬영이 됐죠.”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 사진 스타제국

그는 극중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승단을 노렸으나 실패한 후 원인터내셔널이라는 굴지의 무역회사에 이른바 ‘낙하산’으로 입사한다. 갖은 수모와 굴욕을 참고 그 만의 방식으로 인턴과정을 통과했지만 학력이 고졸로 낮다는 이유로 계약직에 머물고 만다. 하지만 그는 영업 3팀 오상식 차장(이성민), 천관웅 과장(박해준), 김동식 대리(김대명) 등 ‘영혼의 콤비’인 선배들의 보살핌으로 ‘상사맨’으로 자란다. 이 과정에서 사내에서 물고 물리고, 뜯고 뜯기는 직장인들의 정글 같은 일상의 민낯이 드러났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의 극중 연기장면. 사진 tvN

“장그래를 보면 제 모습이 많이 떠올라요. 바둑으로 치면 ‘필요하지 않은 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굳이 연예계 생활을 해야 하는 지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고요. 실제 가수를 하다 다시 전공인 공학을 살려서 직장인이 될까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그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공감을 많이 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청자들이 장그래에 공감하는 부분이 더 컸어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스타제국

임시완은 올해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생>으로 1980년대에 2010년대를 산 20대를 연기했다. 그는 “20대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일은 영광스럽다”면서 “제가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고민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극중 오차장이 동창생 변성철에게 접대를 할 때 들은 말 “나는 내가 술 먹고 싶을 때 먹는데, 너는 남이 술 먹고 싶을 때 먹는 구나”라는 대사를 가장 기억나는 대사로 꼽으며 원래 꿈이었던 직장인이 될 생각을 얼른 고쳐먹었다고 한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 사진 스타제국

“직장인들에 대해 느끼기 쉽지 않은 직업이라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냥 어렴풋이 ‘힘들지 않을까’라고만 생각한 거죠. 하지만 그게 가시화가 되고 직간접적으로 체험을 하게 되니 그분들의 애환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됐어요. 그분들의 삶에 제가 감히 공감했다고 말하는 자체가 외람된 것 같았어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의 극중 연기장면. 사진 tvN

그는 마지막 요르단 출장 관련 에피소드도 전했다. 극중 샘플을 빼돌린 직원을 찾기 위해 요르단으로 급파된 장그래는 요르단 수도 암만 시내에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과 액션을 선보여 초반 장그래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결국 장그래도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가’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스타제국

“<미생>에서 볼 수 있는 상식적인 장그래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냥 시청자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는 힘들고 처절하고 안타까웠던 친구가 그래도 현실에서 벗어나 멋있어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건 대리만족이 아닐까 생각했죠.”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 사진 스타제국

그는 원작 웹툰의 작가 윤태호가 구상한 시즌2가 드라마화된다면 “조금 더 성장한 장그래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완생(完生)’에는 다가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반 치 정도는 자라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2014년이 믿을 수 없는 한 해였다고 돌아보면서 “큰 욕심을 부려서 많이 받은 게 아니 듯 자연스럽게 내 입지를 인정하고 묵묵히 별다른 의미없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에서 극중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스타제국

“드라마를 하면서 인정받았다는 느낌보다는 연기의 밑천이 많이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아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거렸죠. 연기적인 부분에서 저는 아직 ‘미생(未生)’이에요. 하지만 마냥 시간을 떼우는 작품이 아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미생>은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체험을 해보니 ‘내가 장그래다’는 말을 선뜻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장그래들에게 미안해요.”

다양한 이야기를 하던 임시완의 눈빛이 다시 깊어진다. 과연 이 배우는 훗날 자신 일생일대의 연기가 될 장그래 역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장그래’라는 큰 그림자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유심히 지켜볼만한 화두가 생긴 기분이었다. 소속사 관계자는 임시완이 “이 드라마 이후 운동을 해서 몸의 틀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아직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20대의 불안과 초조함을 상징하는 그 어깨를 또 다시 누구에게서 찾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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