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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차두리와 유누스, 두 고참 발끝에 결승행 달렸다

호주 아시안컵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한국과 이라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베테랑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차두리(35·서울)가 있다면, 이라크는 유누스 마흐무드(32)를 자랑한다. 두 선수는 각각 수비수와 골잡이로 역할은 다르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경기력이 빼닮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든든한 베테랑에 목말랐던 한국은 차두리의 등장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던 차두리는 이번 아시안컵에 오른쪽 수비수로 참가했다. 아시안컵만 벌써 세 번째 출전. 이젠 출전하는 경기마다 아시안컵 한국인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그의 합류는 평균 연령이 25.83세에 불과한 어린 한국 축구에 경험을 덧붙였다. 한국이 매 경기 수비를 다른 얼굴로 짜는 혼란 속에서도 대회 유일한 무실점 팀으로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다.

세월 속에 다져진 차두리의 재주는 수비가 전부가 아니다. 주전을 다투던 김창수(가시와 레이솔)가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하자 3경기를 뛰며 2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차두리는 고비로 여겨졌던 지난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선 1-0으로 앞선 연장 후반 14분 70여m를 질주한 뒤 손흥민(레버쿠젠)의 쐐기골을 돕는 택배 크로스를 올려 박수갈채를 받았다. 차두리 본인은 “나이가 들다보니 몸이 회복하는 속도가 예전만 못하다”고 고개를 젓고 있지만, 축구 전문가와 팬들은 입을 모아 그가 러시아월드컵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두리.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차두리의 존재감은 녹빛 그라운드를 벗어날 때 더욱 빛난다. 경기가 없을 때는 솔선수범해 상대를 분석하거나 후배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게 일상이다. 큰 대회가 익숙하지 않은 후배들은 아예 자신의 방으로 불러 일일 상담교사로 변신하기도 한다. 띠동갑 후배이자 수비수인 김진수(호펜하임)가 첫 출전한 아시안컵에서 전 경기를 풀타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김진수는 “정신적 지주인 두리형이 격에서 제일 열심히 뛰는데, 우리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차두리는 쿠웨이트전이 끝난 뒤 경기력 논란으로 비판받던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료 선수들과 한국 축구의 힘을 믿는다는 글과 사진을 올리며 분위기를 바꿔놓기도 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61)이 “베테랑은 단순히 경기가 안 풀릴 때 해결사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니라 팀 전체를 이끈다는 사실을 차두리가 입증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이유다.

이라크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인 유누스 마흐무드도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다. 이라크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A매치(135경기·53골)를 뛴 그가 여전히 조국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숨쉬고 있다. 에이스의 상징을 달고 뛴 유누스는 지난 23일 숙적인 이란과의 아시안컵 8강전에선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에서 극적인 다이빙 헤딩골을 넣으며 승리를 선물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4강,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준우승, 2007년 아시안컵 우승 등으로 이라크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유누스의 이번 대회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전성기 아시아를 호령했던 기량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2013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잠깐 뛰었을 뿐 1년 넘게 소속팀 없이 국가대표로만 뛰고 있는 그가 팔팔한 후배 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유누스는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 팔레스타인전에 골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이란과의 8강전에서 기막힌 활약으로 이런 의심을 모두 잠재웠다. 유누스가 이란전에서 득점을 넣은 뒤 첼시에서 뛰었던 사뮈엘 에투가 했던 지팡이 세리머니를 펼친 건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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