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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경X피플] 염혜란의 '꽃길', 그리고 봉준호

배우 염혜란, 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배우 염혜란은 상승세다.

200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 노크를 하다 2019년 KBS2 ‘동백꽃 필 무렵’으로 제대로 터졌다. KBS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그는 최근엔 OCN ‘경이로운 소문’으로 ‘대박’을 일궜다.

“제가 상승세인가 봐요.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인생에 파동과 그래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이렇게 상승세만 있는 건 아니고 힘들 날도 오겠죠? 반대로 힘들 땐 좋은 시기도 올 거라고 믿으며 기다렸어요.”

긍정적인 성격 하나로 버텨왔다. 단역 시절, 사람들이 배우로 봐주지 않는 수모를 겪을 때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견디니 그의 평범한 얼굴은 ‘무기’가 됐고, 20여년 세월은 ‘내공’이 됐다.

“지금은 조금 두렵기도 해요.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작품이 많아질수록 제 밑천이 들통나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요. 하하.”

이번 달에만 영화 ‘새해전야’ ‘아이’ ‘빛과 철’ 등 3편을 개봉시키는 ‘대세’ 염혜란의 지난 이야기를 ‘스포츠경향’이 살펴봤다.

OCN ‘경이로운 소문’ 영화 ‘새해전야’ ‘빛과 철’ 속 염혜란.

■“서러웠던 단역 시절, 봉준호 감독은 달랐어요”

대학로 무대는 그에겐 친정이었다. 뿌리를 두고 천천히 스크린에 문을 두드렸다. 그가 처음 발을 담근 상업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었다. ‘소현 엄마’라는 아주 작은 역이었다.

“참 기억이 생생해요. 촬영지가 시골이었고 제 역이 아주 작은 터라 의상도 직접 준비했어요. 돈이 없어서 좋지 않은 점퍼 하나를 입고 촬영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연출부가 절 막더라고요. ‘여기에서 구경하세요’라고요. 제가 배우인 줄 몰랐던 거에요. 그땐 ‘저 배우에요’라고 말하는 것도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어렵게 말하곤 현장으로 들어갔죠.”

그때 봉준호 감독이 멀리서 염혜란 이름 석자를 외쳤다. 평소 막내 스태프 이름까지 모두 외우는 그의 배려와 존중이, 하마터면 작아질 뻔한 한 배우의 기를 살렸다.

“봉 감독이 ‘염혜란 배우 왔어요’라고 크게 말하는데, 이름 석자를 다 기억한다는 것에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분량도 아주 적은데도 날 챙기고 다 보는구나’ 싶었어요. 배우는 대접받는 순간 더 힘을 얻게 되거든요. 저뿐만 아니었어요. 수많은 연극배우가 나오는데도, 아주 작은 역의 배우들까지도 귀하게 여기니 그렇게 좋은 작품이 나온 거죠.”

■“개성 없다는 얼굴, 오히려 무기가 됐죠”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얼굴’은 작은 콤플렉스였다. 주변에서 개성이 없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단다.

“캐릭터가 약하다는 말에, 살을 찌우기라도 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개성 있는 배역을 맡기엔 외모가 어정쩡하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계속 활동해보니 오히려 평범한 얼굴로 할 게 더 많아지더라고요. 무기가 된 거죠. 평범한 얼굴이라 여러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제가 가진 얼굴을 좋아하게 됐요. 심한 짝눈까지도요.”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엔 여러 변곡점들이 있었다.

“첫 작품은 tvN ‘디어 마이 프렌드’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TV엔 절대 출연 못할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드라마에 넘어올 수 있었죠. 물론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건 tvN ‘도깨비’를 만났을 때에야 실현 됐거든요. 한 꼬마가 절 보고 ‘도깨비다’라고 하는데, TV의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어요. 제겐 큰 변곡점이었고요.”

이젠 명실상부 ‘대세 주연’이다. ‘경이로운 소문’으로 OCN 역대 최고 시청률을 쓴 그는 스크린으로 넘어와 ‘빛과 철’(18일 개봉)로 두번째 흥행을 노린다. 데뷔 후 처음으로 배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이 작품으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서 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시나리오가 아주 탄탄해요. 살짝 가지 하나 집었는데 고구마 줄기가 따라오듯 사건들이 튀어나와 몰입력이 대단하고요. ‘영남’이 마치 어디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연기하고 싶었어요. 만약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허투로 연기하는 제게 화를 낼 것 같았거든요. 평면적이거나 단순한 인물이 아닌, 섬세하게 접근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서 본 인물 같다는 평을 해준다면, 제겐 아주 좋은 칭찬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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