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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라이브] ‘울지 않아, 떨지 않아’ 막내라인의 유쾌한 반란

남자 양궁 김제덕이 경기 중 함성을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리스트 김제덕(17)은 특이하다. 양궁 선수들은 활을 쏘기 전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과녁을 응시하며 집중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 응원단이 다른 나라 선수들을 방해하기 위해 ‘짜요’ 응원으로 방해했을 정도로 양궁은 집중과 침묵의 스포츠다. 그런데 김제덕은 스스로 함성을 지른다. 진천선수촌 미디어데이 당시 징조를 보인 김제덕의 ‘사자후’는 도쿄에 온 뒤 와르르 쏟아지고 있다. 활을 쏜 뒤는 물론 심지어 활을 쏘러 들어가기 전에도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코리아 파이팅”을 힘껏 외친다. 초등학생 때 TV프로그램에서 ‘양궁 천재’로 소개됐을 때도 “중요한 것은 멘탈”이라는 어른 같은 인터뷰로 화제였던 김제덕은 ‘양궁 절대 강국’ 대한민국에서도 매우 희귀한 천재다.

여자 양궁에도 ‘천재 막내’가 있다. 김제덕과 같이 혼성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여자단체전 올림픽 9연패의 역사까지 이뤄 이번 올림픽 첫 2관왕에 오른 안산(20)은 ‘애어른’이다.

여자 대표팀은 경기 분위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첫 순서를 막내 안산에게 맡겼다. ‘맏언니’ 강채영은 “안산은 과감하고 정확하게 쏘는 것이 장점이라 첫 주자로 결정했다”고 했다. 빨리 정확하게 쏘면서 언니들을 이끈 안산은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도 중심에 섰다. 흔한 막내들과 달리 마이크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니들을 대신해 대답할 때도 있다. 금메달을 딴 뒤, 특이한 이름에 “안산 홍보대사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언니들은 까르르 웃음부터 터뜨렸지만 안산은 또박또박 “안산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1

탁구 막내 신유빈이 시 방호복으로 무장한 채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탁구의 막내 신유빈(17)은 일본 출국 패션이 대화제였다. 나이가 어려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못한 채 출국하게 되자 마치 방역 관계자처럼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단단히 갖춰입고 등장해 눈길을 확 끌었다. 올림픽에 나서면서 열렬한 ‘아미’임을 밝혀 방탄소년단으로부터 이미 응원까지 받아내는 데 성공한 ‘탁구 신동’은 지난 25일 여자 단식 2라운드에서는 58세의 백전노장 니 시아 리안(룩셈부르크)을 풀세트 접전 끝에 누르고 3라운드에 진출해 ‘신동’ 명성을 인증하기도 했다.

수영의 황선우(18)는 이미 사고를 쳤다. 남자 자유형 200m 예선에서 박태환의 11년 묵은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패기는 덤이다. 처음 나선 올림픽, 그저 “열심히 하겠다”고만 해도 어색하지 않을 10대 어린 선수지만 “결승까지 잘 해보겠다. 좋게 봐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배드민턴의 막내 안세영(19)은 인터뷰를 할 때는 얌전하지만 스스로를 ‘관심 받기 좋아하는 관종’이라고 표현하고 이겨서 신나면 골반 춤을 추기도 하는 전형적인 10대다. 무서운 속도로 세계랭킹을 끌어올려 8위로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안세영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방수현 이후 맥이 끊긴 한국 여자 단식 메달 기대주로 주목받으며 순항하고 있다.

한국 스포츠는 2000년대 후반 새 세대들의 등장으로 몇 단계를 올라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이 한국 수영 역사를 바꿨고, 그 즈음 함께 세계 중심에 선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피겨 금메달을 따냈다. 그때 스피드스케이팅에도 이상화와 모태범이 나타났다. 운동선수에게 보기 드물던 ‘네일아트’를 하고,‘ 모히칸 스타일’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던 이들 세대는 2010년대를 쥐락펴락 하며 한국 스포츠 역사를 바꿨다.

한 세대를 건너 또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 혹시 이번에는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10년은 맡기기에 충분할 것 같은 ‘뉴 제너레이션’의 등장이 지금 도쿄의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든든한 포만감을 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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