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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규의 알쓸패잡] SPA 브랜드는 지고 슬로 패션이 뜬다

ESG 시대에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이 ‘환경’이고, 환경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분야가 패션이다. 또 이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패스트 패션’으로 불리는 SPA 브랜드들이다.

‘패스트 패션’은 패스트푸드에서 유래한 말로, 빠른 유행을 따르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저렴하게 생산되고 유통되는 옷을 일컫는다. 2~3주 단위로 진열대의 옷이 바뀌면서 한때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열악한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제3세계 섬유노동자들의 눈물과 한숨이 깔려 있었다. 또한 ‘빠른 트렌드’와 ‘착한 가격’에 맞추느라 합성섬유을 사용하게 되고,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수백 배 강한 온실가스인 이산화질소를 배출하며, 의류쓰레기를 소각하면서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키는 등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디자인도 서로 비슷해 브랜드 고유의 ‘색깔’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요즘은 ‘슬로 패션’이 뜨고 있다. 패스트 패션과 달리 ‘슬로 패션’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환경의 본연적 관계를 복구하고자 하는 ‘느린 동작’에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처음에는 대량생산 의류와 필요 이상의 유행을 거부하는 운동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고 그 방법이 확대돼 지금은 ‘지속가능한’ ‘에코’ ‘그린’ ‘윤리적 패션’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슬로 패션의 시작은 영국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선보인 ‘나는 비닐백이 아니랍니다’라는 가방이었다. 환경에 기여하겠다고 만들어진 이 가방을 유명 배우들이 들고 다니면서 패셔니스타들에 의해 ‘환경가방’으로 퍼져나갔다. 에코백의 시작이다.

이후 친환경적·윤리적 가치를 담은 패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빠르게’보다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질 높은 제품들이 생산됐다. 또 유행을 좇기보다는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입고, 안 입는 청바지나 옷들을 리폼해 새롭게 탄생시킨다. 당근마켓 등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순환시키기도 한다.

한 논문에 따르면 슬로 패션을 소비하는 고객들의 욕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느끼며 의식 있는 소비를 실천하는 모습이다. 둘째는 건강한 제품을 추구하는 일이다.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논문 연구면접 참여자들은 ‘오가닉’ ‘천연’ ‘슬로’ 등의 단어를 언급하며 제품이 주는 이미지에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친환경적 이미지가 건강을 생각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미적 추구다. 패션은 타인에게 자기를 표현하는 상징적 도구다. 따라서 외적 이미지를 신선하거나 특이하게 만들어 주는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패션’이라는 키워드는 계속 상승 중이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와 ‘H&M’ 같은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인식되고 소비도 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그 영향력이 아직은 패스트 패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은 패스트 패션을 규제하는 새로운 규정을 제안할 예정이다. 앞으로 친환경 소비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슬로 패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광규는 누구?

이랜드그룹, F&F, EXR 중국 등의 임원을 거쳐 NEXO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패션스마트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패션산업에 30년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상공인 지원, 청년 인큐베이팅, 패션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 Gerson Lehrman Group의 패션 부문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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