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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대사전] 명랑한 이모님, 염혜란

넷플릭스 ‘더 글로리’ 포스터.

*기사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는 여자다. 허구한 날 매를 맞아 얼굴에 피멍자국이 가실 날 없으면서도 자신을 때리고 착취하는 남편을 떠나지 못한다. 남의 집 가정부일로 평생 생계를 꾸려온 탓에 만나는 여자마다 나이불문 ‘사모님’이라 호칭하며 스스로 낮아진다. 뭣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어느 날은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라며 웃어 보인다. 그런데 그 미소는 가짜가 아닌 진짜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연출 안길호·극본 김은숙)속 ‘이모님’, 염혜란이다.

극 중 그는 강현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내내 ‘이모님’으로 불렸다. ‘이모님’은 자신이 일하던 집 쓰레기를 뒤져 증거를 모으던 문동은(송혜교)을 협박해 스스로 동은의 복수극에 합류한다. 그의 남루한 옷차림과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외모는 누군가를 미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만일 동은의 복수극이 실패했더라도, 휴대폰에 저장된 ‘이모님’이 복수극의 조력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을 거다. 심지어 이모님은 마치 탐정이 장래 희망이었던 사람마냥 몰래 사진찍기도, 거짓말도, 운전도 척척 해낸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동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던 현남은 시즌2에서 박연진(임지연)에게 정체가 발각돼 긴장감을 높인다. 그러나 연진의 협박에도 끝까지 문동은을 배신하지 않는 의리로 시청자들을 안심시켰다.

현남은 이 차가운 복수극에서 웃음버튼을 담당했다. 그는 ‘더 글로리’에서 남편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고 사는 가장 불행한 인물이지만, 반면 가장 따뜻한 인물이었다. 그의 생뚱맞은 농담은 영혼까지 부서져 있던 동은마저도 미소짓게 만든다. 자신의 존재가 들통나 복수가 엎어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눈물버튼도 담당한다. 하나뿐인 어린 딸 선아를 외국으로 떠나보내며 얼굴도 모르는 홈스테이 집주인에게 “저의 기쁨을 당신께 보내드리니 부디 사랑을 주세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담담한 그 내레이션 대목은 수많은 ‘엄마’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또 남편의 시신을 제 눈으로 확인한 뒤 주저앉아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통한을 쏟아내는 장면 역시 대중의 찬사와 함께 눈물을 이끌어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더 글로리’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대중이 ‘이토록 똘끼 가득한 불행한 년’에 동정심 아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모두 염혜란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김은숙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염혜란을 두고 “‘더 글로리’ 마음속 1번 캐스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작가의 기대에 부응하듯 염혜란은 고통과 명랑함이 공존하는 ‘이모님’ 그 자체가 됐다.

200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그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감초 역할을 선보였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 tvN ‘도깨비’에서 은탁을 괴롭히는 이모 역할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이후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선 ‘사이다’ 변호사 자영 역으로 여성 팬들을 휩쓸었다.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통해서는 카운터즈의 원년멤버이자 힐러인 ‘추매옥’ 을 통해 악귀잡는 액션연기까지 선보인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속 염혜란. 넷플릭스 캡처.

염혜란이 ‘더 글로리’에서 연기한 강현남은 동은의 조력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동은의 얼어붙은 마음은 조력자 현남을 만난 순간 이미 조금씩 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명랑한 현남의 마음이,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준 현남의 의리가 옥상 위 올라선 동은의 발걸음을 잡아끈 것이 아닐까.

드라마 말미 문동은과 남자친구 주여정은 또 다른 복수를 계획하고, 현남은 “이모님 구합니다. 연락주세요”라는 문자를 받는다. 현남은 곧바로 동은에게 선물 받은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다음 시즌에서 더욱더 명랑해질 이모님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강현남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왼쪽).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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