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스경연예연구소] 두 번 울리는 TV ‘치유예능’

경향DB

‘치유 예능’의 홍수 속에서 미디어는 갈등장면을 어떻게 소비할까.

지난 30일 MBC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이하 ‘결혼지옥’)을 통해 의붓딸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남성이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해 12월 ‘결혼지옥’에서는 한 남성이 일곱 살 의붓딸과 놀아주며 ‘가짜 주사 놀이’라는 이름 하에 피해 아동의 몸을 만지고, 아동의 거부 의사가 있었음에도 놓아주지 않는 장면이 송출되며 파장이 일었다. 방송은 이후 문제 장면에 대한 지적 대신 사건의 심각성, 부부간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며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실제로 방송 직후 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는 명백한 아동 성추행”이라며 항의가 이어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하루 수천 건의 민원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점화됐다.

그러자 MBC 측은 지난해 12월 21일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송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당시 상황에서 우려될 만한 모든 지점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라며 2주간 결방했다. 오은영 박사 역시 “시청자분들이 놀라신 그 사전 촬영된 장면에서 저 또한 많은 우려를 했다”라며 “긴 녹화 분량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라고 해명했다.

MBN

‘결혼지옥’ 뿐일까. 많은 가족 예능에서는 가정 간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속시원한 해결과정 대신 소재의 자극성을 택했다. 지난 8일 방영된 MBN 예능 프로그램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3’에서는 세 아들을 두고 남편의 군입대로 인해 갈등을 겪는 부부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 커플은 인터뷰를 통해 “긴급생계지원이 만료됐다”라며 재정난을 털어놓는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남편의 군입대로 인해 청소년 부모 급여가 정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한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에 첫째는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고, 셋째는 구개열 판정을 받아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

방송의 초점은 어디로 잡혔을까. 아이의 치료보다는 부부의 러브스토리와 갈등 상황, 해결과정에 집중한다. 방송은 각서를 쓰며 화해한 부부와 인력 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지며 끝났다. 아이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없었다. 실제로 방송 직후 누리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방송을 보다 화가 났다” “아이가 무슨 죄냐” “아이의 교육이 시급해 보였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채널S

지난달 31일 방송된 채널S 예능 프로그램 ‘진격의 언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방송에서는 19세에 임신을 한 여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여성은 원치 않게 출산을 한 후 아직까지 전남편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남편은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의 사망신고를 종용하는 상황. 방송은 아이가 처한 위험보다는 무속인이라는 여성의 직업과 남편의 학대 등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끝났다. 솔루션 역시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한다”라는 MC의 조언 뿐이다.

초점이 흐려진 채 자극에만 집중하게 된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정석희 방송평론가는 이에 대해 “가족 예능 특성상 아동의 모든 것이 방송으로 나간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라며 “무조건 아동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두고 방송을 내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